[헤리리뷰] 협동조합 / 안전한 밥상을 위해
1년에 십여차례 통화를 할까.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옥천까지 왔다며, 이번 아버지 생신에는 내려오지 말라는 전갈이다. 짧은 통화에도 여지없이 “쌀은 있냐”는 물음이 이어진다. 설에 주신 쌀 40㎏ 아직 먹고 있고, 3월 어머니 생신 때 주신 쌀가마니는 풀지도 않았는데 벌써 쌀벌레가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쌀은 많아요”라는 대답으로 통화를 마쳤다.
식구 셋에 쌀 한가마니라니. 벌써부터 쌀이 있는 창고방은 들어가고 싶지도 않다. 까만 쌀벌레부터 하얀 실지렁이 쌀벌레까지.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나는 그 쌀을 그냥 버릴 수가 없다. 쌀 보냈다, 택배비는 여기서 줬으니 잘 받았느냐는 통화가 며느리와의 유일한 소통인 어머니가 묻고 싶은 게 쌀의 유무만이 아닌 것을 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며느리는 벌레 난 쌀을 버리지 않는 것으로 시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린다. 허리 굽은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식품엔 왜 GMO 표시 없나
도시인의 삶은 바쁘다. 자급자족을 할 수 없는 이 시대에 먹을거리 문제는 항상 신뢰를 묻게 한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마련하는 일에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식품 하나를 사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1차 농산물은 싱싱함과 원산지 확인 정도로 그칠 수 있지만, 각종 가공식품은 좀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식품 표시는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자세하고 확실한 정보 공개가 중요하다.
소비자에게는 자신이 먹는 식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알 권리가 있다. 그런데 유전자조작식품(GMO·지엠오) 수입국 1·2위를 다투는 우리나라 식품에 지엠오 표시는 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먹는 것이 나’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싶다. 내가 먹는 농산물이 누가, 어디에서, 어떤 방식, 어떤 마음을 담아 지은 것인지 말이다. 내가 먹는 가공식품이 어떤 원료로, 어떤 기준으로 만드는지 자세하게 알고 싶다.
메르스가 그랬듯 모르면 불안하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자동차보다 농산물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신토불이가 최고라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모르고 먹고 싶지는 않다. 지엠오 아닌 것만 어떻게 고집하냐, 식품 가격이 너무 비싸지면 어찌하냐 물을 수 있겠다. 생협에서 판매하는 지엠오 아닌 국내산 콩으로 만든 두부는 2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식품 표시는 농부와 나의 소통 통로
농부가 콩 세알을 심는 마음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정보는 식품 표시에 담길 수 있다. 아이쿱 생협에서 펼치고 있는 ‘예외없는’ 식품완전표시제 캠페인도 그 출발점에 서 있다. 쌀에는 쌀벌레가 생기는 게 당연하듯,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게 당연하다. 나는 식품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그 식품에 담긴 정보를 취사선택해 밥상을 차리고, 내 가족과 소통한다. 우리 시어머니가 직접 지은 쌀로 도시 며느리와 소통하듯이 말이다. 무엇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지엠오가 아닌 국내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먹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예외없는’ 식품완전표시제가 실행될 수 있도록 이번 캠페인에 내 돈 1만원을 기꺼이 내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밥상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윤혜정 아이쿱시민기자(덕양햇살아이쿱생협) yain115@naver.com,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윤혜정 아이쿱시민기자(덕양햇살아이쿱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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