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강원도 강릉에서 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2022’에서 (왼쪽부터) 안상일 하이퍼커넥트 대표, 이성화 지에스(GS)리테일 신사업부문장, 임정민 시그나이트파트너스 투자총괄, 신성우 현대자동차 상무가 발언하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제공
코로나19 특수는 줄어들고 금리는 올라가자 벤처캐피털(VC)들의 스타트업 투자가 감소하는 가운데 틈새를 노린 ‘기업벤처캐피털(CVC)’이 시장의 주요 ‘선수’로 떠오르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 9~10일 강원도 강릉 세인트존스호텔에서 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 2022’에 참석한 스타트업·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들은 시브이시가 침체된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시브이시는 기업들이 계열사 또는 사업부 형태로 운영하는 벤처캐피털이다.
시브이시의 장점은 무엇보다 ‘뒷배’가 든든하다는 점이다. 유정호 케이비(KB)인베스트먼트 글로벌투자그룹장은 “올해 들어서만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규모의 국내 스타트업 최소 세 곳이 기업공개(IPO) 계획을 접었다고 알려질 정도로 시장 상황이 나쁘다보니 투자를 유치하려는 스타트업들도 좀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자본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며 “이로 인해 시브이시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무적 투자’뿐 아니라 ‘전략적 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시브이시의 특징이다. 특히 모기업의 신사업 탐색이나 기술 경쟁력 강화 등 필요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는 당장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계약도 종종 성사된다. 외부 기업 투자가 대기업 내부 혁신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최항집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살아남으려면 혁신이 불가피하다는 의지를 갖고 시브이시를 만드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시브이시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의 임정민 투자 총괄은 “전세계 160개 시브이시를 대상으로 설립 이유를 물어보니 절반가량이 ‘도전과 모험을 위해서’라고 답했다”며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신세계그룹의 기존 사업 영역과 연계가 쉬운 리테일·모빌리티·라이프스타일 분야나 기술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바이오·헬스케어·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신성우 현대자동차 시브이시팀 이노베이션담당 상무는 “과거에는 투자 한 건을 성사시키려면 회사 안의 여러 사업부를 각각 설득해야 해 힘들었는데, 지금은 역으로 사업부 쪽에서 먼저 특정 기업에 투자해 달라고 찾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다만, 외부 유한책임투자자(LP)들로부터 조성한 펀드로 투자를 해 재무 성과의 제약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전통적 브이시와 달리 시브이시는 100% 자기 자본으로 투자를 집행하는 경우가 많아 전략적 투자 비중을 높게 둘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스타트업이 시브이시를 만들어 또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도 늘었다. 지난해 토스가 타다 운영사인 브이시엔시(VCNC) 지분 60%를 사들인 게 대표적이다. 더핑크퐁컴퍼니, 쿠팡, 우아한형제들 등도 계열사 형태로 시브이시를 운영하거나 내부 사업부에서 직접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스타트업 시브이시가 대기업의 특정 사업 부문을 거꾸로 인수하는 경우도 있다. 토스는 지난 2020년 엘지유플러스(LGU+)의 전자결제(PG) 사업부를 인수했다.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도 올해 2월 아워홈 계열사인 크린누리의 사업과 설비 일체를 사들였다.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의 시브이시 두나무앤파트너스의 임수진 파트너는 “두나무 역시 아직 성장해야 하는 스타트업인 만큼 다양한 분야 기업과 협업할 필요가 있다”며 “두나무앤파트너스가 기회를 탐색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정상엽 쿠팡 전무는 “지난 2016년 빅데이터·클라우드 부문에서 실력 있는 개발자를 다수 보유한 그루터를 인수해 이듬해 쿠팡 서비스 전체를 3개월 만에 클라우드로 이전한 것처럼, 고객들이 겪고 있는 불편함을 해결해줄 수 있는 기업들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릉/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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