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와 민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국회에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무기한 표류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에 최소·자율 규제 원칙을 적용할 방침을 밝히면서 ‘민간협의기구’가 온플법 역할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돼서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이 빅테크 독점을 규제할 법안들을 마련하는 움직임과도 대비된다. 새 정부가 택한 민간 주도 자율규제 방식이 플랫폼 독과점의 부작용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부처와 플랫폼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빠르면 상반기에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소비자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플랫폼 자율규제 협의기구’가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짠 안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협의기구를 총괄하고, 공정위·방송통신위원회·중소벤처기업부 등 소관 부서들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기구는 갑을 분과, 소비자 분과, 데이터 인공지능 분과,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분과 등으로 구성되며, 분쟁조정을 비롯해 민간 주도의 자율규약 등을 만드는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상공인과 시민단체들은 “경기에 뛰는 선수가 직접 심판을 보는 꼴”이라며 자율규제기구를 불신하고 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급성장한 플랫폼 기업들이 이윤 추구만을 목표로 입점업체와의 공정거래 행위, 플랫폼 노동자의 저임금 문제, 소비자 피해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카카오택시의 자사 택시 배차 조정과 쿠팡의 자사 브랜드 상품 리뷰 조작 등 사례에서 봤듯이, 이를 규제하는 법적 근거 없이 자율협의에만 맡긴다면 플랫폼 불공정거래 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새 정부의 플랫폼 자율규제 기조는 다른 선진국의 플랫폼 규제 법안 마련 움직임과 상반된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메타),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의 종주국 격인 미국에선 지난해 6월 하원에서 ‘플랫폼 반독점 패키지 5대 법안’이 발의돼 모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에 앞서 유럽연합(EU)은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P2B) 간 거래의 불공정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성 및 투명성 규칙’을 2020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서치원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플랫폼 규제를 먼저 시행한 유럽연합도 2016년 전후 자율규제 논의를 하던 중 부작용으로 인해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 규칙이 제정된 것”이라며 “독과점 상태에 이르러야 수익창출이 가능한 플랫폼의 특성상 자율규제로 시간을 지체할 경우 입점업체와 소비자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치권의 온플법 제정 논의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플랫폼 독과점의 부작용이 커지는 상황에서 자율규제가 실패할 경우 언제든지 온플법이 카드로 꺼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공정위 관계자는 “온플법 폐지라고 결론짓기엔 아직 이르다”며 “온라인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자율규제의 불확실성도 큰 만큼 규제안에 대한 부처 간 논의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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