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 이용자 의사 재확인하며 ‘사전 진화’
KT, 재발 막으려 ‘안심센터’ 설치…배상판결엔 불복
KT, 재발 막으려 ‘안심센터’ 설치…배상판결엔 불복
에스케이브로드밴드(SKB)는 2주 전부터 2만여명에 이르는 초고속인터넷 부가서비스 ‘가디언’ 이용자 모두에게 가입 동의 여부를 되묻고 있다. 자녀의 음란물 접근을 차단해주는 서비스라며 한달 동안 무료로 체험해보라고 해서 응했더니 가입 동의도 받지 않고 두달째부터 월 3000원씩 요금이 부과됐다는 가입자 민원을 받고서다. 이 업체 관계자는 “되묻는 과정에서 15%가량이 동의 사실을 부인해, 그동안 받은 가디언 이용료를 전액 되돌려주고 해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이티(KT)가 본인 동의도 받지 않고 집전화 정액요금제 가입자를 모집한 뒤 요금을 더 받아온 사실이 드러나 혼쭐난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정액요금제 부당가입 건으로 회사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올해에만 1000억원 가까이 물어준 케이티 사례를 거울삼아 조심하는 분위기가 통신업계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는 “케이티 정액요금제 사태를 보면서 이제부터는 무단가입 행위를 하다 걸리면 방송통신위원회 현장조사와 과징금 부과, 이용자 집단 소송, 회사 이미지 실추를 피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전원 재동의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고객들을 가디언 무료체험 마케팅에 참여시킨 뒤, 체험 기간이 끝날 때쯤 문자메시지나 전자우편으로 가입을 권유한 다음 거부 의사가 없으면 가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해 이용료를 부과했다.
케이티 역시 ‘안심센터’를 만들어 정액요금제 무단가입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고 있다. 안심센터는 신규 부가서비스나 새 요금제 가입 신청과 동의 등을 제대로 받았는지를 점검하는 일을 한다. 영업점에서 부가서비스나 요금제 가입 신청을 받아 전산망에 올리면 자동으로 안심센터로 통보돼 심사를 받는다. 안심센터의 ‘적합’ 확인을 받지 못하면 개통이 되지 못하고, 영업점으로 반송돼 보완 절차를 거친다. 서유열 케이티 홈고객부문 사장은 “12월 중에 안심센터를 200명 규모로 키울 것”이라며 “안심센터가 케이티를 무단가입 없는 통신업체로 거듭나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케이티는 정액요금제 부당가입 피해를 입은 집전화 고객에게 더 받은 요금 환불과 함께 정신적 피해 보상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도 통신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대전지방법원은 지난 6월, 케이티 집전화 가입자 한창희씨가 동의 없이 ‘마이스타일’ 요금제에 가입시켜 요금을 더 받아갔다며 케이티를 상대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것에 대해, ‘케이티는 더 받아간 요금 4만2000원과 함께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3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한씨는 지난해 9월 동의 없이 정액요금제에 가입시켜 더 받아간 요금 환불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200만원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대전지방법원에 냈다. 법원은 판결 전 3차례 화해를 권고했으나, 모두 케이티 쪽의 거부로 무산됐다. 케이티는 “한씨 어머니가 동의했다”며 “가족이 함께 쓰는 집전화의 특성상 가족의 동의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케이티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이번 판결은 통신업체의 부당가입 행위에 대해 정신적 피해까지 보상하라고 하는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통신업체들은 그동안 고객을 본인 동의 없이 특정 요금제나 부가서비스에 가입시켜 요금을 더 받아오다 적발될 때마다 더 받은 요금을 돌려주는 것으로 끝냈다. 통신업체의 특정 요금제나 부가서비스 부당가입과 관련해, 그동안 소비자단체에서는 고객 개인정보를 부당하게 활용한 행위여서 개인정보 침해에 따른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법원은 특히 가족의 동의를 받았다는 케이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정액요금제 부당가입 건과 관련한 케이티와 피해 고객 사이의 공방전과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케이티가 환불을 거부하는 사례 가운데 상당수가 가족이 대신 동의했다는 이유이다. 법원 판결대로라면 정액요금제 부당가입 피해자로 확인돼 환불을 받은 케이티 집전화 가입자들이 추가로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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