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는 8일 마지막 윈도엑스피(XP) 정기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윈도엑스피에 대한 기술 지원 서비스를 중단한다. 윈도엑스피 운영체제(OS)에 대한 기술 지원을 끝내는 시점이 하루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이용자, 기관, 정부 등 주체별로 막바지 대비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사진은 7일 오후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누리집에 윈도엑스피 종료 잔여기간 안내 화면. 연합뉴스
YS·DJ정부 때 운영체제 종속
2000년대 중반과 똑같이 반복
삼성·엘지 등 컴퓨터 판촉 가세
2000년대 중반과 똑같이 반복
삼성·엘지 등 컴퓨터 판촉 가세
예정대로 8일 ‘윈도엑스피(XP)’ 사용자에 대한 보안 지원이 종료된다. 이로써 이날은 ‘윈도엑스피 퇴출 집행일’이란 기록을 갖게 됐다. 하지만 아직도 전세계 개인용컴퓨터(PC) 사용자 열명 중 두명 꼴로 윈도엑스피를 쓰고 있다.
엠에스는 왜 아직도 많은 고객들이 사용중인 윈도엑스피를 서둘러 퇴출시키는 것일까? ‘윈도8.1’ 등 최신 윈도 제품을 팔기 위해서다. 말이 보안 지원 종료이지, 사실은 윈도8.1 판촉 활동이다. 여기에는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같은 개인용 컴퓨터 회사들도 가세하고 있다.
엠에스는 지난해 윈도엑스피 보안 지원 종료 일정을 정한 뒤 사용자들에게 대응책 마련을 서두를 것을 촉구해왔다. 엠에스는 ‘실질적인 대응책’으로 “뛰어난 성능과 가장 높은 수준의 보안을 제공하는 윈도8.1로 업그레이드하라”고 권했다. 엠에스는 이르면 이번 주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같은 컴퓨터 회사들과 함께 하는 윈도 운용체제 업그레이드 및 최신 윈도 운영체제 가격 할인을 통한 업그레이드 촉진 프로그램 등을 잇따라 진행할 예정이다.
엠에스는 윈도 업그레이드 지원 사이트(www.amiXP.co.kr)에 접속해 현재 사용중인 운영체제 버전을 확인한 뒤 업그레이드 방법 및 호환성 테스트·데이터 백업 절차를 거쳐 ‘엠에스 스토어’(www.microsoftstore.co.kr)에서 제품 키를 구입해 내려받으라고 안내했다. 최신 운영체계로 바꾸는 데는 당연히 돈이 든다. 윈도8.1 일반 사용자용은 17만2000원, 고급 사용자용(프로)은 31만원이다. 사용자로서는 바꾸자니 비용 부담이 크고, 그냥 쓰자니 보안에 문제가 생길까 찜찜하다.
이런 모습은 2000년대 중반에도 있었다. 그 때는 ‘윈도98’의 보안 지원이 종료되니 ‘윈도비스타’로 서둘러 업그레이드하라고 촉구했다. 엠에스가 일방적으로 보안 지원 종료 일정을 발표하고, 우리나라 정부 관계자가 엠에스 쪽에 일정을 늦춰줄 것을 요청하고, 엠에스가 생색을 내며 일정을 몇 달 늦춰주고 하는 게 이번과 똑같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개인용컴퓨터 운영체제와 휴대전화 같은 스마트 제품들의 최대 경쟁자는 바로 ‘친형’ 뻘 되는 제품이다. 윈도8.1의 가장 큰 경쟁자는 애플 것도, 공개 소프트웨어 진영의 ‘리눅스’도 아닌 바로 윈도엑스피다. 엠에스 쪽에서 보면, 최신 운영체제 매출을 일으키려면 무엇보다 사용자들한테서 윈도엑스피를 퇴출시켜야 한다. 1990년대까지는 새로운 기능과 성능을 앞세워 운영체제 업그레이드를 유도했지만, 지금은 보안 지원 종료가 더 효율적이다.
유독 한국에서만 요란스런 것은 우리나라 국가정보화가 엠에스 제품에 종속돼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시절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정보화를 재촉하자, 당장 쉽다고 엠에스 제품을 사다 깐 게 지금의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엠에스에 종속된 상태이다 보니 소비자 대접도 못받아, 1996년에는 국가정보원에 딸린 국가사이버안전센터장이 미국 시애틀의 엠에스 본사를 찾아가 윈도98에 대한 보안 지원 종료 일정을 늦춰 달라고 요청하다가 박대를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마디로 다시 회자되고 있는 ‘액티브엑스(X)’ 역시 국가정보화를 엠에스에 의존해 추진한 결과로 겪는 대가 가운데 하나다.
진보네트워크센터와 학계 전문가들이 이런 부작용 가능성을 들어 엠에스 제품에 의존하는 국가정보화의 위험성을 지적했으나 정부는 무시했다.
결국 우리나라 국가정보화가 엠에스 종속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10년으로 돼 있는 엠에스의 ‘제품 수명 주기 정책’에 따라 앞으로 몇 년 뒤에는 다시 윈도8.1을 차기 제품으로 바꾸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게 뻔하다. 업계 전문가는 “대안은 이번 기회에 정부기관, 교육기관, 군 등은 윈도8.1 대신 리눅스 같은 공개 소프트웨어로 업그레이드하고, 국가 인프라에 해당되는 부분인만큼 정부 차원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