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화재가 일어난 경기도 과천시 삼성에스디에스(SDS) 과천센터에서 21일 오전 관계자들이 데이터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하드디스크를 옮기고 있다. 삼성에스디에스 과천센터는 삼성에스디에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들의 시스템을 운영, 서비스하고 백업데이터 등을 보관하고 있다. 과천/뉴스1
데이터센터 건물 용도는 ‘공장’, 등록증엔 ‘부동산 임대업’
20일 오후 발생한 삼성에스디에스(SDS) 과천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는 국내 정부기관·기업들의 금쪽같이 여기는 업무용 데이터를 처리·보관하는 데이터센터 운영이 매우 허술해 자칫 치명적인 전산망 마비 사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 극명한 사례였다. 이번 화재는 4층에서 발생해 외벽을 타고 11층까지 번졌고, 급기야 11층 내부까지 퍼졌다. 삼성에스디에스 관계자는 “건물 외벽 마감재에 인화물질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데이터센터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데이터를 처리·보관하는 컴퓨터를 모아놓은 곳이다. 은행 입출금, 신용카드 사용, 이동통신 통화 등을 이곳의 컴퓨터가 처리하고 결과를 보관한다. 화재·홍수·지진·낙뢰 등으로 데이터센터가 파괴되거나 장애를 일으키면, 전산 처리가 중단되거나 보관된 데이터를 잃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자칫 국가가 마비될 수도 있기 때문에 데이터센터는 ‘특수건물’로 지정하고 엄격한 방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성에스디에스는 삼성생명 소유인 이 건물을 빌려 데이터센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삼성에스디에스는 그동안 세계적인 수준의 방재 시스템을 갖춘 국내 최고 데이터센터라고 선전해왔는데, 이번 화재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한국아이티(IT)서비스협회 최효근 상무는 “데이터센터에도 화재가 발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건물 전체로 번지고, 특히 건물 안으로까지 확대됐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행법에 운영 규정·기준 없어
업체마다 임의로 용도 정해
방화·방수·내진 수준도 제각각 “엄격한 잣대 적용땐 건물 옮겨야
규제 완화 흐름에 은근히 기대와” 건물 외벽타고 불 번져 내부까지
세계적 수준 방재시스템 ‘무색’
삼성 계열사 이미지도 동반추락 이번 화재 사고로 삼성 계열사들의 이미지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삼성에스디에스는 삼성카드와 삼성생명 등 삼성 계열사들의 전산업무를 도맡고 있다. 이번 화재 사고 이후 삼성카드 사용자들이 온라인결제를 못해 불편을 겪고 있고, 인터넷쇼핑몰 업체들의 타격도 크다. 그렇다고 다른 데이터센터로 옮겨갈 수도 없다. 데이터 이전 작업이 만만찮아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데다, 삼성 계열사들은 ‘일감 몰아주기’로 삼성에스디에스에 발목이 묶여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 이건희 삼성 회장의 세 자녀가 삼성에스디에스의 주요 주주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데이터센터 관리의 허술함은 삼성에스디에스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 처리·보관을 맡기는 쪽에서 들으면 화들짝 놀랄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는 현행 법에 ‘데이터센터’ 건물 용도가 지정돼 있지 않고, 데이터센터가 어떤 사업인지 정의돼 있지 않은데서 비롯된다. 해당 업체들이 임의로 정해, 각 데이터센터의 방화·방수·내진 수준이 제각각이다. 200여곳에 이르는 국내 데이터센터(‘인터넷데이터센터’라고도 불림) 건물은 도시형 공장, 연구시설, 교육시설 등 각양각색의 용도로 분류돼 있다. 각각 처한 여건에 따라 허가 받기 쉽고 관리하기 편한 용도로 임의 지정한 탓이다. 삼성에스디에스는 수원·구미 데이터센터 건물의 용도를 ‘공장’으로 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 데이터센터 운영 사업의 ‘업태’ 역시 제각각이다. 상당수 데이터센터 사업자 등록증에는 ‘부동산 임대업’이라고 명시돼 있다. 건물을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서버(컴퓨터) 보관 장소로 빌려주는 사업 특성을 반영해 임의로 정했다고 해당 업체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최효근 상무는 “우리나라를 정보화 강국이라고 하지만, 데이터센터 운영과 관련해서는 굉장히 후진적이다. 정부기관과 기업의 전산 장비와 데이터를 모두 데이터센터에 모아놨지만, 운영 규정과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화재나 지진 등으로 데이터가 소실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도 쉽지 않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함께 데이터센터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가 이처럼 방치된 것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규제완화’ 외침 탓도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데이터센터 기준이 마련되려면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대기업 데이터센터가 건물을 옮겨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대통령의 규제 완화 방침에 기대 온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에스디에스 과천데이터센터 화재 원인은 정전압장치(UPS) 과부하로 밝혀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1일 “전력 피크 상황에 대비해 정전압장치를 손본 뒤 시험가동을 하는 과정에서 과부하가 발생해 화재가 났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업체마다 임의로 용도 정해
방화·방수·내진 수준도 제각각 “엄격한 잣대 적용땐 건물 옮겨야
규제 완화 흐름에 은근히 기대와” 건물 외벽타고 불 번져 내부까지
세계적 수준 방재시스템 ‘무색’
삼성 계열사 이미지도 동반추락 이번 화재 사고로 삼성 계열사들의 이미지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삼성에스디에스는 삼성카드와 삼성생명 등 삼성 계열사들의 전산업무를 도맡고 있다. 이번 화재 사고 이후 삼성카드 사용자들이 온라인결제를 못해 불편을 겪고 있고, 인터넷쇼핑몰 업체들의 타격도 크다. 그렇다고 다른 데이터센터로 옮겨갈 수도 없다. 데이터 이전 작업이 만만찮아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은데다, 삼성 계열사들은 ‘일감 몰아주기’로 삼성에스디에스에 발목이 묶여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 이건희 삼성 회장의 세 자녀가 삼성에스디에스의 주요 주주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데이터센터 관리의 허술함은 삼성에스디에스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 처리·보관을 맡기는 쪽에서 들으면 화들짝 놀랄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는 현행 법에 ‘데이터센터’ 건물 용도가 지정돼 있지 않고, 데이터센터가 어떤 사업인지 정의돼 있지 않은데서 비롯된다. 해당 업체들이 임의로 정해, 각 데이터센터의 방화·방수·내진 수준이 제각각이다. 200여곳에 이르는 국내 데이터센터(‘인터넷데이터센터’라고도 불림) 건물은 도시형 공장, 연구시설, 교육시설 등 각양각색의 용도로 분류돼 있다. 각각 처한 여건에 따라 허가 받기 쉽고 관리하기 편한 용도로 임의 지정한 탓이다. 삼성에스디에스는 수원·구미 데이터센터 건물의 용도를 ‘공장’으로 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 데이터센터 운영 사업의 ‘업태’ 역시 제각각이다. 상당수 데이터센터 사업자 등록증에는 ‘부동산 임대업’이라고 명시돼 있다. 건물을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서버(컴퓨터) 보관 장소로 빌려주는 사업 특성을 반영해 임의로 정했다고 해당 업체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최효근 상무는 “우리나라를 정보화 강국이라고 하지만, 데이터센터 운영과 관련해서는 굉장히 후진적이다. 정부기관과 기업의 전산 장비와 데이터를 모두 데이터센터에 모아놨지만, 운영 규정과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화재나 지진 등으로 데이터가 소실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도 쉽지 않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함께 데이터센터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가 이처럼 방치된 것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규제완화’ 외침 탓도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데이터센터 기준이 마련되려면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대기업 데이터센터가 건물을 옮겨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대통령의 규제 완화 방침에 기대 온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에스디에스 과천데이터센터 화재 원인은 정전압장치(UPS) 과부하로 밝혀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1일 “전력 피크 상황에 대비해 정전압장치를 손본 뒤 시험가동을 하는 과정에서 과부하가 발생해 화재가 났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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