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블록은 와인과 같은 투자 가치가 있어요.”
브릭링크 박마빈(41) 이사는 레고 블록(이하 레고)을 “장난감으로 갖고 놀다가 싫증 나면 살 때보다 비싼 값에 되팔 수도 있는, 경제적으로 소장 가치가 큰 투자 대상”이라고 꼽았다. 이미 세계적으로 8000명 이상이 레고를 이용해 연간 100만달러(11억원) 이상을 벌고 있단다. 그는 “레고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도 제공한다. 개인간 중고 레고 온라인 거래장터 ‘브릭링크’에 이어 오는 18일에는 ‘목샵’(MOCshop)도 출범한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출신인 박 이사는 네오위즈 창업 멤버로, 채팅(세이클럽)과 게임(네오위즈게임즈) 사업을 이끌었다. 지금도 지분을 갖고 있다. 이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김정주 엔엑스씨(NXC·넥슨 지주회사) 대표의 권유를 받아 브릭링크에 합류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6월 브릭링크를 인수해 온라인게임에 이은 또다른 성공을 꿈꾸고 있다.
박 이사는 카이스트 선배 기업가인 김 대표와 손발을 맞추며 브릭링크를 레고 종합 포털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첫째 결과물이 목샵이다. 목(MOC)이란 소비자가 직접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생산까지 한다는 뜻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각) 아침 미국 어바인에 있는 브릭링크의 목샵 개발팀 사무실에서 만난 박 이사는 “브릭링크는 앞으로 소비자가 생산도 하는 현장으로 거듭나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를 고집하는 기존 생산권력을 허물어뜨리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목샵 서비스가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릭링크의 사업 기반은 ‘레고 마니아’들이다. 레고 마니아들은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에 이르고, 레고의 역사가 70년에 이르면서 세대를 이어 레고 마니아가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어릴 때는 레고의 디자인대로 맞추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어른이 돼서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해 더 크고 정교하게 만들어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실제 크기의 버스정류장, 자동차, 우주발사대까지 만들어졌다.
문제는 그에 필요한 블록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인데, 이런 고민을 하는 마니아가 늘면서 브릭링크가 만들어졌다. 박 이사는 “누군가가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타던 대장함을 레고로 만들어볼 생각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이전에 만들어 갖고 있던 군함, 로봇, 자동차 따위를 다 해체해도 블록이 모자라거나 꼭 필요한 색깔이나 모양의 블록이 없을 수 있다. 마니아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필요한 블록을 반드시 구하고 싶어하는데, 이를 충족시켜주는 게 바로 브릭링크”라고 설명했다. 브릭링크의 수익 모델은 거래금액의 2~5%에 이르는 수수료다.
그동안 브릭링크는 몇가지 ‘신화’를 만들어냈다. 먼저 브릭링크 회원들의 도움으로 필요한 블록을 구해 자신의 디자인을 레고로 재현하는 기쁨을 누린 마니아들이 당장 자신한테는 필요없는 블록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이 어떤 모양과 색깔의 블록을 갖고 있는지를 자발적으로 브릭링크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회원 수와 거래량이 급증하기 시작해 지금은 회원이 40여만명에 이르고, 하루 거래되는 블록만도 15만달러어치에 달한다고 한다.
브릭링크 고유의 온라인 레고 카탈로그도 만들어졌다. 레고는 그동안 10만종 넘는 블록을 공급하면서도 카탈로그를 만들지 않았다. 블록별 이름이나 디자인 번호가 없다. 이 때문에 거래에 불편함이 많았다. 박 이사는 “블록별로 이름과 번호를 부여해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샵은 여기에 레고 매장에 없는 디자인을 만들어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장터 기능까지 제공한다. 그동안 레고만 하던 ‘생산’을 레고 소비자들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영화 <명량>에 나온 대장함을 레고로 만들 때 어떤 종류의 블록이 몇개나 필요한지를 디자인한 뒤 가격표를 달아 사이트에 올리면, 해당 블록 공급 능력을 가진 개인이나 온라인 레고 중고 매장 등이 디자인을 사 필요한 블록과 함께 최종 소비자한테 파는 것이다. 거래금액 및 수량에 따라 디자인 제공자는 디자인 개발비를, 브릭링크는 거래 수수료를 받는다. 크리스 앤더슨이 <메이커스>란 책에서 말한 ‘개인 생산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박 이사는 “브릭링크도 중고 레고 디자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김정주 대표가 직접 브릭링크를 통해 알게 된 ‘재야’ 레고 디자인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고, 가정이나 어린이집 등에 방치돼 있는 레고 블록을 수거할 방안을 짜고 있다. 레고 블록은 플라스틱이라 수거해서 세척하면 새것이나 다름없다.
어바인/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