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검열 논란 불끄려 정보요청 내역 공개했는데…
카톡 이용자들 이탈 막으려 공개
‘뒤통수’ 맞은 정보수사기관 눈치
합병 승인절차 걸림돌 될까 걱정
시민단체는 ‘투명성 보고서’ 환영
카톡 이용자들 이탈 막으려 공개
‘뒤통수’ 맞은 정보수사기관 눈치
합병 승인절차 걸림돌 될까 걱정
시민단체는 ‘투명성 보고서’ 환영
“발등에 붙은 불부터 꺼야겠기에 일단 지르긴 했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9일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어떻게 나올지, 후환이 두렵다”고 했다. 전 날 일으킨 사태에 대한 뒷걱정이 큰 모습이다. 다음카카오는 박근혜 정부 들어 정보·수사기관의 카카오톡 이용자에 대한 감청(대화 내용 실시간 엿보기) 영장이 147건, 압수수색(지난 대화 내용 요구) 영장은 4807건, 통신사실확인자료(이용 내역) 제공 요청은 2467건 있었다고 공개했다. 카톡 감청은 대화 내용을 3~7일 단위로 복사해 건넨다고 하는 등 구체적인 영장 집행 방법과 카톡 이용자들의 정보 가운데 어떤 것들을 정보수사기관에 건네는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전기통신사업법상 다음카카오는 부가통신사업자다. 우리나라 통신사업자가 직접 정보수사기관의 감청 및 압수수색 영장과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요청 내역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에스케이텔레콤(SKT)·케이티(KT)·엘지유플러스(LGU+) 등은 엄두도 못내던 일이다. 그동안은 통신사업자들이 정해진 양식에 따라 미래창조과학부에 내역을 보고하면, 방통위가 집계해 반기별로 공개해왔다. 다만, 미국의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등은 ‘투명성 보고서’를 통해 세계 각 나라 정부기관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지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다음카카오는 검찰의 ‘사이버상의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정 대응’ 발표로 ‘사이버 검열’ 논란이 촉발된 이후 카톡 이용자들의 ‘사이버 망명’이 이어지자 일단 검열 논란부터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정보수사기관의 감청·압수수색 영장 및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요청 내역을 전격 공개했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카톡 트래픽에는 별 변화가 없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회사 이미지에는 큰 타격이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보수사기관이나 미래부에도 알리지 못했다. 이번 징검다리 연휴기간을 지나면서 이용자들의 ‘카톡 검열’ 불안이 해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시민단체, 카톡 이용자들은 한 목소리로 환영하고 있다. 경실련은 9일 성명을 내어 “다음카카오가 이용자 신뢰도 제고를 위해 ‘투명성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히고, 통신 3사와 다른 소셜네트워크 사업자 및 포털사 등도 정부기관에 제공한 이용자 정보 내역을 이른 시일 내에 구체적으로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용자들도 갈채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된 정보수사기관의 반응이다. 다음카카오는 괘씸하게 여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게 합병 승인을 받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다. 다음카카오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카카오의 합병 회사로, 지난 1일 출범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합병 승인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다음 관계자는 “합병 승인이 안될 리는 없겠지만, 까다롭고 치명적인 승인 조건을 붙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정원·검찰·경찰·기무사 같은 ‘권력기관’들과 신경전을 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이번 사이버 검열 사태에서도 보듯, 이들 기관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거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위를 할 때마다 카톡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표현의 자유는 ‘눈짓’만으로 위축된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내부에서는 정보수사기관별 통계를 따로 공개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정말로 찍히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고, 법률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도 있을 것 같아 자제했다”고 털어놨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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