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요 신문·방송사의 편집·보도국장과 논설·해설위원들은 삼성전자 쪽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단통법 고문’을 당한다고 한다. 한 방송사 보도국장은 “나는 솔직히 단통법이 뭔지 잘 모른다. 처음에는 ‘간통법’이라고 잘못 알아듣고, 갑자기 웬 간통법 얘기를 꺼내나 하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지난 1일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하 단통법) 시행 뒤 줄어든 보조금 탓에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단말기 시장은 얼어붙자 법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법 제정 자체를 끝까지 반대했던 삼성전자 쪽은 “단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들의 단말기 교체 비용 부담이 엄청 커졌다. 이따위 법을 왜 만들어 소비자 부담을 키우고, 잘 나가던 휴대전화 산업과 이동통신 유통점의 목을 죄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한다. ‘아이폰6가 미국에선 21만원, 일본에선 공짜인데, 한국은 단통법 때문에 40만~60만원을 내고 사야 한다’는 등 삼성전자 주장을 뒷받침하는 보도도 잇따른다.
그동안 보조금을 받아 고가 스마트폰을 자주 바꿔 온 ‘메뚜기 가입자’ 쪽에서 보면 일리가 있다. 반면 이통시장 전체에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등의 분석을 보면, 단통법 시행 이후 가입자들이 월 8만5000원 이상 고가 요금제를 선택하는 비율은 지난달 31%에서 법 시행 뒤 9%로 급감했다. 단말기 보조금을 더 받으려고 무작정 고가 요금제를 고르는 행태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또 지난 9월 하루 평균 2900명에 그치던 중고 단말기 가입자도 이달 들어서는 5000여명으로 늘어, 중고 단말기 가입자 비중이 4.2%에서 10.3%로 증가했다. 단말기를 가져오면 통신요금을 12% 깎아주는 ‘분리요금제’를 활용해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이는 알뜰 이용 행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휴대전화 제조업체 쪽은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국내 시장점유율이 70%에 육박하고, 고가 전략을 펴온 삼성전자 쪽의 타격이 크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10월 국내 판매량이 지난 달에 견줘 40%를 밑도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단통법이 알뜰 소비 행태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해 미리 대비하지 못한 탓이 크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그동안 우리나라 이통 가입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비싼 단말기 값을 물어왔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이 국내 시장을 장악해 비싼 단말기를 공급하는 전략을 펴온 결과다. 이들은 같은 급의 단말기를 국내에서 더 비싸게 팔기까지 했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 이동통신 가입자 중 75만여명이 평균 85만원의 휴대전화 할부금을 연체하고 있다.
국산 단말기 판매량 감소 문제는 값을 떨어뜨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엘지전자는 발빠르게 보급형 단말기 출시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엉뚱하게 단통법의 실효성만 꼬집고 있다. 단통법이 이통사 배만 불린다는 주장도 편다. 이통사들로 하여금 보조금을 더 쓰게 하고, 분리공시제가 단통법 개정을 통해 되살아나는 사태를 막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단통법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면서, 분리공시제 도입을 통한 스마트폰 가격 투명화와 출고가 인하, 이통사들의 통신요금 인하가 병행돼야 단통법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는 여론이 부각되는 모습은 그나마 다행이다.
김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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