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오후 서울 한남동 다음카카오 한남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다음카카오와 금융결제원이 이날부터 시작한 모바일 금융 서비스 ‘뱅크월렛카카오’를 소개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별도 앱을 내려받아, 충전형 선불카드인 ‘뱅크머니’와 은행 현금카드를 등록해 이용할 수 있다. 상대방의 계좌번호 없이도 10만원 한도에서 송금할 수 있다. 하루에 받을 수 있는 ‘뱅크머니’는 50만원, 충전 한도는 최대 50만원으로 제한되며 송금 수수료는 일정 기간 면제된다. 연합뉴스
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밥값이나 집들이 선물값 ‘엔빵’할 때 좋아요.”
다음카카오(이하 다카)가 모바일 간편결제 및 소액송금 기능을 가진 ‘뱅크월렛카카오’(이하 뱅카) 서비스를 시작하는 날, 다카 홍보팀은 뱅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엔빵은 식사비를 공동 부담하거나 집들이·병문안 선물 등을 공동으로 살 때, 한 사람이 계산한 뒤 나중에 ‘엔(N)분의 1’로 정산하는 것을 말한다. “4명이 밥을 먹었을 때, 그 자리에서 4분의 1씩 각각 돈을 내는 게 모양새가 안 좋잖아요. 뱅카를 이용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어요. 10원 단위까지도 보낼 수 있어, 카드 긁은 사람이 잔돈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없어요.”
뱅카의 다른 용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카드사들과 은행들까지 들쑤시며 난리를 친 끝에 선보인 뱅카 서비스의 용도가 엔빵을 위한 것이라니?
궁금증은 곧 풀렸다. 뱅카 출시를 계기로 유사 서비스가 잇따랐다. 이동통신 3사와 네이버·구글코리아 등과 함께 삼성전자 등도 비슷한 기능의 서비스를 앞세워 부각시키거나 출시할 계획을 내놨다. 중국의 신흥 스마트폰 공급업체 샤오미의 창업자 레이쥔의 말을 활용하면, ‘핀테크’(금융과 정보통신기술을 합친 말) 바람이 일자 ‘돼지’까지 ‘바람의 길목’으로 나와 날개짓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다카가 뱅카를 엔빵으로 설명하는 것에 비해, 다른 업체들은 한결같이 “이용하기 간편하다”거나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카 홍보실은 이에 대해 “기존 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불편함을 해결해주기 위해 내놓는 것인데 당연히 편리하고, 금융서비스인데 당연히 보안성이 보장돼야 하는 거 아닌가요. ‘편리하다’, ‘보안 걱정 안해도 된다’라고 강조하는 게 더 우습지 않나요”라고 일축했다.
뱅카는 카카오톡 이용자들한테 친구한테 메시지를 보내 듯, 간편하게 하루 최대 10만원까지 송금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받는 사람의 계좌번호를 알 필요도 없다. 다만 사전에 양쪽 모두 스마트폰 안에 ‘모바일 지갑’을 만들어둬야 한다. 카톡 이용자들로 하여금 모바일 지갑을 만들게 하는 게 뱅카 마케팅의 핵심인 셈이다.
주위 사람들한테 뱅카를 엔빵으로 설명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무슨 서비스인지는 모르지만, 어디다 쓰는 것인지는 쉽게 이해된다는 대답이 많았다. 요약하면 이용자 눈높이에 맞춘 설명이란다.
모바일 지갑을 만들게 하는 마케팅 스토리로 엔빵 얘기는 꽤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10명이 같이 밥을 먹고 엔빵을 하는 경우, 그 가운데 한명이 “뱅카로 보낼게” 내지 “뱅카로 보내줘”라고 하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이 별 거부감 없이 모바일 지갑을 만든단다. 카톡은 수다를 떠는 곳이다. 이를 통해 모바일 지갑 만들기가 이른바 엘티이(LTE)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다카 쪽은 설명한다.
“하루 송금 한도가 10만원이라는 게 아쉬워요. 한도를 높이면 경조금 주고받기, 자녀 용돈주기, 부모님께 효도비 드리기도 가능할텐데.” 다카가 엔빵 다음의 마케팅 스토리 소재로 경조사비와 효도비 얘기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대다수 정보통신기술 업체들이 새 서비스를 내놓을 때마다 이용자 경험과 눈높이를 감안하지 않고 공급자 쪽 주장만을 앞세우는 게 안타까워 적어봤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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