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기자의 뒤집어보기
10여개 소비자단체가 9일 오후 서울 영등포에 있는 홈플러스 매장 앞에서 집회를 열어, 홈플러스가 고객을 기만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판매하기까지 한 행위를 한 것에 항의하고, 홈플러스 매장 가지 않기 운동에 돌입했다. 전국민에게 사과하고 조속히 피해보상에 나서줄 것도 홈플러스에 요구했다. 소비자단체들은 홈플러스 매장 가지 않기 캠페인을 전국의 모든 홈플러스 매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앞서 홈플러스는 이른바 ‘낚시성 경품행사’ 등을 통해 매장 이용 고객들의 개인정보 2400여만건을 수집한 뒤 보험사 여러 곳에 팔아 232억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을 포함해 전·현직 임직원 6명을 기소한 것을 보면,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인정보 장사’를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검찰 조사 결과를 보면, 홈플러스는 ‘보험서비스팀’이란 조직까지 만들어 개인정보 장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개인정보는 인권이다. 전세계적으로 개인정보를 ‘정보인권’에 포함시켜, 유출과 남용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고객을 기만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본인 동의 없이 팔아먹기까지 한 행위는 고객의 정보인권을 유린한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홈플러스의 행위는 고의성이 짙다. 처음부터 장사를 하려고 수집한 게 명백하다. 직원의 실수로 노출되거나 해킹을 당해 유출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개인정보 장사에 이용된 개인정보가 드러난 것만 2400여만건이라니,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정보인권이 유린당한 셈이다. 이번 홈플러스 불매운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왜 국민 모두가 홈플러스 불매운동에 동참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호는 불매운동이지만, 실제로는 유린된 정보인권 회복 및 재발방지책 마련 투쟁이다. ‘퇴출’까지 불사하는 불매운동을 통해 다시는 기업들이 고객 개인정보 장사에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함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금은 개인정보가 이름·주민등록번호·전화번호·집주소 등에 국한되지만, 앞으로는 지문·홍채·얼굴사진 등으로 확대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도록 방치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홈플러스 쪽에선 소비자단체들의 불매운동에 따른 매출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세일’을 하거나 ‘공짜’ 마케팅에 나설 공산이 있어 보인다. 거기에 넘어가면, 물건값 몇푼에 정보인권 유린 행위를 눈감아주는 꼴이 돼 버린다.
이 참에 홈플러스에서 개인정보를 사 마케팅에 활용한 보험사들도 혼내줘야 한다. 이들 역시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정보인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대부분 이름있는 보험사들일 것이다. 반드시 대국민 사과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정보인권 보호 차원에서 불매운동을 벌이거나 위자료 청구소송을 벌여야 한다. 또 검찰 조사와 별도로, 개인정보 보호 관련 부처인 안전행정부·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서 철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엄중하게 제재해야 한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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