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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모바일게임 급성장 4G 상용화 덕

등록 2015-02-15 19:45

한국 이통기술 진화의 역사
1984년 한국이동통신(오늘날 에스케이텔레콤)이 설립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이동통신 서비스가 처음 시작됐다. 아날로그 방식의 1세대 이동통신이었다. 서울, 안양, 수원, 성남 등 수도권 지역에서 처음 서비스가 시작돼 약 10년 만에 전국 74개 시로 확대됐다. 돈 많은 사장님들이나 승용차에 카폰을 설치하거나 벽돌만한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이동통신을 대중화시킨 것은 2G였다. 디지털 방식을 채택한 2G는 1G에 비해 주파수 대역당 더 많은 가입자를 수용할 수 있어 경제성을 크게 높였다. 1996년 우리나라에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통신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됐는데, 불과 3년 만인 1999년 국내 이동전화 가입자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 1896년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처음 설치된 유선전화가 1000만 회선을 돌파하기까지 92년이 걸린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속도다. 2G는 음성통화 중심이었다. 14.4Kbps의 데이터 통신이 가능하긴 했지만, 컬러링을 내려받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2G 휴대전화 대중화
3G 스마트폰 길 터줘
4G 텔레비전까지 위협

2003년 광대역 시디엠에이(WCDMA) 방식의 3G 통신이 국내에서 상용화됐다. 데이터 통신의 시작이었다. 14.4Mbps의 데이터 전송 속도로 영상통화와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졌다. 이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2007년 애플이 최초의 아이폰을 선보였고, 이후 스마트폰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때 대응이 늦는 바람에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였던 노키아는 빠르게 몰락했고, 재빨리 따라잡기에 나선 삼성전자는 이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세계 1위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3G는 국제적으로 통신이 표준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사용하던 휴대전화 그대로 글로벌 로밍이 가능해졌고, 통신시장의 국가간 장벽이 사실상 사라졌다.

2011년 엘티이(LTE) 서비스가 국내 처음으로 상용화되면서 4G 시대가 열렸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동영상 스트리밍이 보편화돼 스마트폰이 텔레비전의 지위를 위협하게 됐다. 데이터 응답 속도도 빨라지면서 모바일 게임이 급성장했다.

유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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