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테크놀러지 어워드]
서울에 거주하는 강주희(가명·33)씨는 최근 대학 비정규직 강사 일을 그만두게 되어 취업과 공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다양한 경로를 모색하고 있는 강씨는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들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막막했다. 최근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정보소통광장’(opengov.seoul.go.kr)을 알게 된 강씨는 이곳에서 다양한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점에 놀랐다. “어떤 정책들이 추진중인지 행정문서를 바로 열람해서 볼 수 있더라고요. 이런 정보들을 시민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정보 찾기도 수월했다고 한다. 여성 관련 정보를 알고 싶은 경우 해당 누리집 상세검색을 통해 관련 부서와 기간을 한정해서 궁금한 내용을 집어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 정보소통광장’은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가 올해 처음 시상하는 ‘휴먼테크놀로지 어워드’의 사회혁신부문 최우수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서울 정보소통광장은 2013년 10월 문을 열어 지난 3월 기준 모두 554만건의 행정정보를 공개했다. 하루 평균 7300명이 접속해 3만4천건의 페이지뷰(이용한 웹페이지의 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서비스가 주목받은 이유는 양이 아니다. 서울 정보소통광장은 정부의 정보공개에 대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인터넷이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지만
기관과 기업의 선전장이기 일쑤
똑똑한 사용자라면
최소노력으로 최대효과 거두지만
대부분은 휘둘리거나 허우적
인간얼굴의 휴먼테크놀로지는
잃어버린 정보주권 되찾자는 것
호갱·왕따 없는 유토피아를 위해 강씨와 같은 한 시민이 행정정보가 궁금한 경우 기존에는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거쳐야 했다. 원하는 정보의 이름을 찾아 청구를 한 뒤 번거로운 절차와 시간을 거쳐야 받아 볼 수 있었다. 정부는 정보를 쥐고 선별해서 내주는 ‘관청’이고, 시민은 이를 요청하는 ‘민원인’인 게 기본인 구조다. 하지만 정보소통광장은 모든 행정정보를 ‘공개’ 대상으로 설정했다. 법으로 공개할 수 없게 규정돼 있는 정보와 개인정보가 담긴 정보를 제외하면 생산 단계의 모든 기록물(결재문서)이 공개된다. 공공데이터의 주인이 정부에서 시민으로 바뀌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첫 사례다. 정부가 시민과 정보를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가는 최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비상상황에서도 핵심 문제로 떠올랐다.
이처럼 정보의 권력구조가 뒤집힐 수 있는 것은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에 담긴 혁신적 속성이 배경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구축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다른 네트워크나 미디어와 달리 주인이 없었다. 누구나 평등하게 자신의 생각과 연구결과를 올릴 수 있었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를 활용할 수 있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이 네트워크는 세계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지금과 같이 거대한 연결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기성의 거대구조에서 비롯된 산물인 대중매체들은 소수의 생각을 다수에게 주입하고 가르치는 ‘선전도구’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각 개인이 개인과 직접 연결하고 소통하는 통로를 열어준 분산형 네트워크는 위계적 질서를 점차 몰아냈다.
이런 체계의 기반은 공개와 공유의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정립되었다. 정보소통광장을 비롯해 의료서비스를 평가·공개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병원평가정보’, 영화 정보를 공유하는 ‘왓챠’, 사용자 참여 기업인사 정보 서비스 ‘잡플래닛’, 스팸전화 정보 공유시스템 ‘후후’ 등 이번 수상작의 상당 부분은 이런 정신의 구현과 강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편 기술의 발전은 기존에 이런 공유의 장에서 소외된 이들도 참여의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역할도 수행했다. 장애인들의 눈, 귀, 입이 되어주는 역할은 기술이 사람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가장 뛰어난 장점 가운데 하나다.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이가 눈의 깜빡임만으로 마우스를 작동해 글을 쓰고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삼성전자의 ‘안구마우스 아이캔플러스’나 에스케이텔레콤(SKT)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함께 개발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들려주는 도서, 뉴스, 잡지 등을 서비스하는 스마트폰 앱인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등의 수상작은 이런 따뜻한 디지털 기술의 본보기다.
접속한 누구나 접근·전파가 가능하고 재생산 비용이 제로(0)에 가깝게 수렴하는 디지털 기술의 속성은 어느 누구나 작은 노력으로 큰 사회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 사회혁신부문 우수상 수상작 ‘호갱노노’(hogangnono.com)는 이를 적절히 보여주는 사례다. ‘호갱’이란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뜻하는 ‘호구’와 ‘고객’의 합성에서 파생된 말이다. 고객처럼 대접해서 벗겨 먹기 좋은 손님을 뜻한다. 호갱노노는 올해 1월 전세계 이케아(스웨덴의 세계 최대 가구업체) 가격비교 누리집으로 문을 열었다. 공동운영자 조목련씨는 “이케아 매장이 국내에서 더 비싸게 판다는 언론 보도에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이 계기”였다고 말했다. 비싸게 판다고는 하는데 몇몇 품목만 제시됐을 뿐이라서 더 싸게 파는 품목은 없는지, 있다면 이를 두고 비싸다고 단정하는 게 옳은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마침 자신도 이사를 준비중이어서 스스로 필요가 있기도 했다. 조사를 해보니 각국의 이케아 매장 사이트들로부터 제품의 가격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데이터를 분석하니 우리나라 이케아가 비싼 품목도 있고 싼 품목도 있어 비싸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드러났다. 조씨는 이를 혼자 보기 아까워 인터넷에 사이트를 만들어 공유하게 되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여러 언론 매체에서 자료를 요청해 왔다.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선 이케아에 쇼핑하러 가기 전 반드시 방문해야 할 누리집으로 공유되었다. 이에 힘입어 ‘2탄’ 부동산 호갱노노도 운영중이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부동산 시세가 실제 거래가격과 차이가 많이 난다는 점에 착안해 이를 지도와 함께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보여준다. 조씨는 “가장 놀란 사람들은 저희들”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큰 반응을 일으킬 줄 몰랐어요. 기술의 난이도나 완성도가 아닌 어떤 가치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죠.” 호갱노노는 아이티(IT) 서비스 기획자인 조씨와 다른 공동운영자 두 사람이 본업과 별개로 취미로 운영하고 있다. 어떤 가치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디지털 기술은 작은 노력도 거대한 반향으로 증폭시켜 준다.
하지만 이 증폭이 늘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들어 ‘디지털 유토피아(이상향)’보다 ‘디지털 디스토피아(이상향의 반대인 어두운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거실 또는 사무실에 놓여 있던 데스크톱 컴퓨터는 거의 24시간을 우리와 함께 보내는 손안의 스마트폰이라는 좀더 밀접한 기기로 진화했다.
디지털 기술은 앞으로 웨어러블,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더 깊이 인간과 결합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기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의 진폭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더 편리하고 강화된 서비스들의 등장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소수 거대기업의 정보 독점, 권력기구의 강화된 감시와 통제의 가능성, 기술에 대한 과장된 기대와 탐닉적인 의존 등이 디스토피아의 밑바탕을 그리고 있다.
기성세대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신기술을 수용하는 어린 세대에게 미치는 기술의 영향은 특히 큰 관심을 모은다. 청소년기의 일탈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이지만, 또래 집단의 약자를 향한 폭력은 때로 당하는 이를 죽음에 이르게도 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 역시 근래의 디지털 도구와 결합해 ‘사이버 불링’(사이버상에서 집단적으로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사례)이라는 기형적인 사용의 형태를 낳았다. 스마트폰 메신저 등을 이용한 폭언의 전송,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욕보이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국내에서는 대표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이 알려졌다.
이번에 대상을 수상한 다음카카오의 ‘카카오톡 사용자 권한강화 서비스’에는 이런 일탈적 활용의 차단을 주목표로 하는 ‘채팅방 재초대 거부’ 기능이 포함돼 있다. 이른바 ‘카톡 감옥’이라고 불리는 사이버 폭력 사례를 고치고자 도입된 서비스다. 카톡 감옥이란 여러 학생이 채팅방을 만들어 괴롭히려는 학생을 초대해서 폭언과 욕을 퍼붓는 행위를 말한다. 해당 학생이 방을 나가고자 해도 카카오톡의 기존 설계상 끊임없는 초대가 가능하기 때문에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뜻에서 ‘감옥’ ‘지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음카카오는 지난해 12월 단체 채팅방을 나가면서 다시 같은 초대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재초대 거부 기능을 도입했다. 뒤늦었다는 비평도 있지만 학생들과 학부모는 꼭 필요한 기능이라고 환영한다. 프로그래머를 꿈꾸는 변교웅(고양 능곡고3)군은 “사이버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기능”이라고 말했다.
이번 상 평가위원을 맡은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초등학생 아들을 둔 입장에서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었는데 주변에 자녀를 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우 중요한 기능이라는 데 공감이 컸다”고 말했다. 특히 이는 큰 사용자군을 두고 있는 인터넷 기업에서 사업자 입장의 필요보다 사용자 입장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고치는 행동을 실제로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 대상 다음카카오/카카오톡
■ 최우수상 네이버/네이버사전
■ 최우수상 서울시/서울 정보소통광장
■ 최우수상 SKT/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 우수상 브레인커머스/잡플래닛
■ 우수상 이고잉/생활코딩
■ 우수상 케이티 씨에스/후후
■ 우수상 지교/디지털헤리티지
■ 우수상 비영리IT지원센터/공익활동ICT지원 서비스
■ 우수상 프로그램스/왓챠
■ 우수상 삼성전자/아이캔플러스
■ 우수상 다음카카오/다음 뉴스펀딩
■ 우수상 ganeswork/호갱노노
■ 우수상 SK플래닛/택시안심서비스
■ 우수상 건심평/병원평가정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지만
기관과 기업의 선전장이기 일쑤
똑똑한 사용자라면
최소노력으로 최대효과 거두지만
대부분은 휘둘리거나 허우적
인간얼굴의 휴먼테크놀로지는
잃어버린 정보주권 되찾자는 것
호갱·왕따 없는 유토피아를 위해 강씨와 같은 한 시민이 행정정보가 궁금한 경우 기존에는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거쳐야 했다. 원하는 정보의 이름을 찾아 청구를 한 뒤 번거로운 절차와 시간을 거쳐야 받아 볼 수 있었다. 정부는 정보를 쥐고 선별해서 내주는 ‘관청’이고, 시민은 이를 요청하는 ‘민원인’인 게 기본인 구조다. 하지만 정보소통광장은 모든 행정정보를 ‘공개’ 대상으로 설정했다. 법으로 공개할 수 없게 규정돼 있는 정보와 개인정보가 담긴 정보를 제외하면 생산 단계의 모든 기록물(결재문서)이 공개된다. 공공데이터의 주인이 정부에서 시민으로 바뀌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첫 사례다. 정부가 시민과 정보를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가는 최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비상상황에서도 핵심 문제로 떠올랐다.
■ 최우수상 네이버/네이버사전
■ 최우수상 서울시/서울 정보소통광장
■ 최우수상 SKT/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 우수상 브레인커머스/잡플래닛
■ 우수상 이고잉/생활코딩
■ 우수상 케이티 씨에스/후후
■ 우수상 지교/디지털헤리티지
■ 우수상 비영리IT지원센터/공익활동ICT지원 서비스
■ 우수상 프로그램스/왓챠
■ 우수상 삼성전자/아이캔플러스
■ 우수상 다음카카오/다음 뉴스펀딩
■ 우수상 ganeswork/호갱노노
■ 우수상 SK플래닛/택시안심서비스
■ 우수상 건심평/병원평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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