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들이 24개월 약정 조건으로 단말기 지원금을 받거나 요금을 할인받은 뒤 중간에 약정을 해지하는 경우 위약금을 번호이동에만 물리고 기기변경에는 면제해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떤 경우에도 가입자를 금전적으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한 전기통신사업법과 단말기유통법(단통법) 위반 소지가 커 논란이 예상된다. 기기변경이란 기존 이통사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면서 단말기를 교체하는 것이고, 번호이동은 전화번호 그대로 다른 이통사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11일 이통사 담당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통사들은 24개월 약정을 한 뒤 기간을 채우지 않고 약정을 해지하면 위약금을 물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약정일로부터 18개월 경과 뒤 기기변경을 하는 경우에는 위약금을 면제해주고 있다. 반면 18개월이 지났어도 번호이동을 하는 경우에는 위약금을 물리고 있다.
엘지유플러스(LGU+)의 경우, 월 6만2000원짜리 정액요금제(LTE 62) 가입자가 24개월 약정을 했다가 19개월째에 번호이동을 하면 19만80원의 위약금을 물리면서 기기변경 때는 이를 면제해주고 있다. 24개월째에 약정을 해지해도 번호이동은 15만4440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지만 기기변경은 전액 면제된다. 엘지유플러스는 “기기변경의 경우 위약금을 면제해주는 게 아니라 유예해주는 것이다. 이통 3사가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통사들이 번호이동과 달리 기기변경에 대해 위약금을 면제해주는 것은 기기변경을 통해 약정 만료를 앞둔 가입자들을 계속 붙잡아두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기기변경을 하면서 단말기 지원금이나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약정할인)을 받기 위해서는 추가로 24개월 약정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번호이동 고객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번호이동을 해서 오거나 가는 가입자를 금전적으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고, 단통법은 번호이동·신규가입·기기변경 고객에게 단말기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 위약금 차별은 이동통신 사업자 간 경쟁의 탄력성을 떨어뜨리고 골목상권에 해당하는 이동통신 유통점들의 경영난을 가속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위약금 부담 때문에 번호이동 대신 기기변경을 선택하는 가입자들이 늘어나면서 에스케이텔레콤(SKT) 중심의 시장 독과점이 강화되고, 번호이동 영업으로 살아가는 이동통신 판매점들의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통사들은 기기변경에 대해서는 대리점에 주는 수수료도 절반 수준으로 삭감하고 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 때 공개한 ‘이동통신 3사의 단통법 시행 전과 후의 단말기 위약금 현황’ 자료를 보면, 단통법 시행 이후 이동통신 중도 해지자들의 단말기 위약금이 급증해 가입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고 있다. 지난해 1~9월 중도 해지자 한명당 평균 위약금이 3만6088원이었던 데 비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의 평균 위약금은 13만1561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번호이동의 경우에도 기기변경 때와 마찬가지로 18개월 뒤부터는 위약금을 면제하고, 차후 위약금 면제 기간을 늘려가는 쪽으로 이통사들의 위약금 부과 체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24개월 약정을 했다고 해도 1년 정도 계약이 유지됐으면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켰다고 봐야 한다. 이동통신 사업자 간 경쟁을 활성화하고, 골목상권을 살리는 차원에서라도 12개월 뒤부터는 기기변경와 번호이동 모두 위약금을 면제해주는 쪽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민희 의원도 “위약금 탓에 이통 3사의 가입자 점유율 구도가 고착되면서 그 폐해가 크다. 가입자 입장에서 보면 사업자간 경쟁이 둔화하면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 중도 해지자들의 단말기 위약금 부담을 낮출 정책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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