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선 한국DMB 대표. 사진 한국DMB 제공
“긴급 재난경보문자 도착을 신호로 휴대전화에 장착된 디엠비(DMB)가 자동으로 켜져 재난방송을 보게 하는 겁니다.”
김경선(53) 한국디엠비(DMB) 대표는 요즘 모바일 기기로 방송을 볼 수 있는 디엠비를 활용한 재난경보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 얘기부터 꺼냈다.
“경주지진 때는 지진 발생 뒤 27분이나 지나 재난경보 문자가 왔다. 이번 포항지진 때는 10초도 안 걸렸다. 진동보다 경보문자가 먼저 도착했다. 경주지진 뒤 정부에 요청해, 재난경보 문자 발송 때 행안부를 거치지 않게 절차를 바꾸고, 이통사들의 재난경보 문자 발송 시스템 용량을 보완한 결과다.”
김 대표는 여기서 더 나아가 디엠비로 사고 내용과 대처법 등을 안내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재난경보 문자가 빨리 도착하긴 했는데, 40자 크기로는 뭘 어쩌라는 내용까지는 담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면, 현재 아이폰을 제외한 모든 휴대전화로 디엠비를 시청할 수 있고, 전국적으로 디엠비 방송망이 구축돼 있다. 또한 지진과 쓰나미 등이 발생하면 건물의 옥상이나 실내에 설치된 이동통신 기지국·중계기와 케이블이 파괴돼 유선·이동통신 서비스가 중단될 수 있다. 김 대표는 “디엠비 기지국은 대부분 도시 주변 산에 설치돼 지진이나 쓰나미 발생 시 상대적으로 파괴 가능성이 적다. 다만 최신 스마트폰은 디엠비 수신 안테나가 내장돼 있지 않아 이어폰을 꽂아야 하는 게 걸림돌이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휴대전화 검증 기준에 디엠비 안테나 내장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디엠비의 최대주주이자 김 대표가 최대주주로 있는 옴니네트웍스는 ‘시비에스(CBS·Cell Broadcasting System)’ 특허를 갖고 있다. 긴급재난문자를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뿌릴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1988년 옴니네트웍스의 모회사였던 옴니텔은 이 기술을 개발해 피처폰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월 900원을 내면 뉴스·주식·스포츠·연예 등 9개 채널의 문자방송을 볼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내놔 10개월 만에 가입자가 100만명을 넘는 등 ‘대박’을 치기도 했다. 스마트폰에 밀려 지금은 서비스가 사라졌다.
김 대표가 이런 생각을 한 배경에는 ‘고육지책’ 측면도 있다. 그를 포함해 벤처기업 창업자 여럿은 노무현 정부 시절 공동으로 한국디엠비를 설립해 방송 사업권을 땄다. “당시 정부는 채널 하나당 연간 광고수익을 650억원으로 추산했다. 채널이 2개니까 완판하면 해마다 1천억원 넘는 광고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해 뛰어들었는데, 요즘 월 1억원도 못올리고 있다.” 그는 “디엠비를 재난경보시스템으로 활용되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휴대전화에 디엠비 기능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 외부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노리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디엠비가 콘텐츠 다양화 측면에서는 실패했으나 국내 휴대전화 시장을 지키는 데는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아이폰 점유율이 외국에 비해 낮은데, 디엠비 덕이다. 초기 갤럭시 스마트폰 광고판에는 ‘디엠비도 시청할 수 있는 한국형 스마트폰’이란 문구가 붙었고, 지금도 홈쇼핑 등에서 스마트폰을 팔 때는 ‘디엠비 시청 가능’을 강조한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디엠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이 디엠비 안테나 내장을 거부한다면 은혜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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