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우 기자의 ‘뉴 빅스비’ 리뷰
위치 · 날씨 물어보면 음성인식은 탁월…나오는 결과는 ‘글쎄’
사용자분석 통해 호텔·항공 예약기능 보탰지만 결제까지 못해
“하이 빅스비, 한겨레신문사 가는 길 알려줘”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나봐요. 아직 할 순 없지만 더 노력해볼게요”
갤럭시 노트9에 탑재된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어시스턴트 플랫폼 ‘빅스비’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입니다. 빅스비는 “태풍이 오면 어떻게 해야 돼?”라고 물으니 “스마트폰이 파손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해드립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난 9일 뉴욕에서 열린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노트 9 공개행사에서 삼성전자는 그동안 빅스비 2.0이라 불렸던 빅스비의 고도화 버전 ‘뉴 빅스비’를 소개하면서, 삼성전자의 다른 가전제품 등을 묶어 ‘빅스비 생태계’를 구성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언팩 행사 때 시연된 빅스비는 데모 서버를 통해 구현된 것이고, 미국 상황에 맞춰 소개됐습니다.
지난 21일 노트9 개통이 시작된 이후에서야 한국에서 빅스비가 어느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부터, 지난 23~24일 이틀동안 사용해 본 ‘뉴 빅스비’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라고요? 저는 사실 언팩 때부터 ‘뉴 빅스비’를 굉장히 강조하기에 기대감이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실제 써보니 위에 말씀드린 것처럼 실망도 컸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행사에서 소개된 ‘뉴 빅스비’. 삼성전자 유튜브 화면 갈무리
빅스비에 “태풍이 오면 어떻게 해야 돼”라고 묻자, 스마트폰이 파손됐을 때 대처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 음성인식 자체는 훌륭한데…
음성인식은 대체로 훌륭했습니다. 이틀 동안 사용해보니 말한 것과 다른 내용이 표출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빅스비를 호출하는 방식은 3가지인데요, 볼륨버튼 아래 있는 빅스비 물리버튼을 누른 채로 말하거나, ‘하이 빅스비’라고 음성 호출하거나, 빅스비 화면 왼쪽 하단에 있는 버튼을 누른 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리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말을 더듬더듬하다보면 기다려주지 않고 바로 결과를 내놓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성질이 좀 급하다고 할까요. 물리버튼을 누른 채 말하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삼성이 뉴빅스비를 시연하면서 ‘음성인식’ 쪽에서 강조한 것은 ‘맥락이해’와 ‘자연어처리’입니다. 인공지능과 대화하지만, 사람과 대화하는 듯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날씨를 예로 들면, 빅스비에 “오늘 날씨 알려줘”라고 하면 현재 위치 날씨를 알려주고. 연이어 “제주도는?”이라고 묻자 제주도의 날씨를 알려줬습니다. “제주도 날씨 알려줘”라고 하지 않아도, 바로 앞에 날씨를 물었으니 날씨 관련 질문이라는 것을 이해했다는 뜻이죠.
관련 테스트를 한 날이 태풍 솔릭이 북상하던 때였는데요, “태풍 위치 알려줘”라고 하니 제대로 된 답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태풍이 오면 어떻게 해야 돼?”라고 물으니 “스마트폰이 파손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해드립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오다 보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구글 어시스턴트에 물으면, “태풍 위치”에 대해서는 기상청 누리집 검색결과가 표출됐고요, “태풍이 오면 어떻게 해야 돼?”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태풍 솔릭 관련 기사 검색결과가 나왔습니다.
빅스비에 목적지 검색 명령을 하자, 사용할 수 없는 기능이라고 뜬다.
■ ‘길 찾기’ 못하는 빅스비
지난 9일 갤럭시 언팩 행사 때, 삼성전자는 빅스비를 시연하면서 △공항까지 가는 차량 예약 △공연예약 △식당예약 등을 시연했고, 보도자료를 통해 “빅스비는 말 한마디로 사용자에게 필요한 검색부터 예약이나 결제까지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죠.
그러나 실제로 사용해보니 안되는 게 많았습니다. ‘생태계 구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삼성전자는 빅스비에 활용 가능한 각종 서비스에 대해서 몇몇 서비스업체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맛집을 검색해주는 망고플레이트, 호텔·항공권 예약 서비스는 인터파크, 커피는 스타벅스 등입니다.
일단 ‘서비스’ 차원에서의 빅스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길 찾기’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스마트폰을 내비게이션 대용으로 쓰거나, 대중교통 최적 경로 찾는 이용자들이 많을 텐데요. 빅스비에서 “~~~가는 길 알려줘”라고 하면 “사용할 수 없는 기능”이라고 합니다.
언팩 행사에선 “제이에프케이(JFK)공항으로 가는 차가 필요해”라고 말하면, 구글 지도와 우버 서비스가 연동되면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우버 예약까지도 도와줬습니다. 한국에서 우버가 서비스되지 않으니, 우버가 안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빅스비를 통한 길 찾기 서비스는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언팩 행사 때는 “빅스비는 구글 지도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는데 한국에선 구글 지도도 못쓴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선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한국인들에게 ‘구글 지도’는 그리 친절한 지도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 달리 삼성이 구글 지도를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네이버나 카카오, 에스케이텔레콤(SKT) 지도를 사용하자니, 이들은 각각의 인공지능 플랫폼이 있어서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낮죠. 이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아직 서비스 초기이고, 한국에서 빅스비가 어떤 지도서비스를 연동할지는 검토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 맛집 검색과 호텔예약
언팩 행사에서는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근처에 있는 식당 리스트를 보여주고, 이메일로 예약까지 해주는 서비스를 시연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망고플레이트 서비스와 손잡고 식당을 알려줍니다. “맛집 검색해줘”라고 물으면 근처에 있는 음식점 리스트가 뜨고요. “한식만 보여줘”라고 하면 한식음식점만 나열됩니다. 음식점 관련 정보인 ‘지도 보여줘’, ‘전화 걸어줘’ 등의 추가 기능도 음성으로 가능합니다.
호텔과 항공권 예약서비스는 인터파크와 손 잡았습니다. 언팩 행사에서는 “노동절 이후에 브루클린에서 하는 콘서트 보여줘”라고 물었는데요. 비슷하게 “추석 연휴에 예약 가능한 서울 호텔 보여줘”라고 물으니, 호텔 80군데가 떴습니다. 추석 당일인 9월24일을 체크인 날짜로 지정한 검색결과였습니다. ‘추석’은 인식했지만, ‘추석연휴’는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대와는 달리 ‘예약’과 ‘결제’를 빅스비 내에서 실행하지는 못했습니다. 인터파크 홈페이지에서 검색결과에 따라 나머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과연 빅스비의 검색결과를 ‘믿고’ 호텔과 항공권 예약을 하는 사용자가 과연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호텔과 항공권의 경우엔 최저가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누리집이나 앱이 굉장히 많은데, 빅스비를 통해서는 인터파크의 검색결과만 나오기 때문이죠. 구글 어시스턴트의 경우 비슷한 질문을 하면, 호텔 가격비교 누리집의 검색결과가 표출됩니다.
“한식만 골라줘”라고 빅스비에 말하자 인터파크의 항공권 검색 시스템이 표출됐다.
■ 알 수 없는 버그들
빅스비를 사용하다 보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버그들도 여럿 나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맛집 검색을 하다가 “한식만 골라줘”라고 하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는 날이 언제인가요” 또는 “언제 가나요 가는 날짜를 말해주세요”라고 뜬금없이 묻고 인터파크 항공 서비스가 떴습니다. “웹에서 보여줘”라고 말하니, 갑자기 체크인·체크아웃 날짜를 선택해달라고 하며, 인터파크 호텔 페이지가 떴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제 말을 문자 그대로 인식하는 것은 뛰어났으나 그 단어와 문장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까닭으로 보입니다. 저런 상황은 여러 가지 환경에서 다시 테스트를 해봤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 갈 길 먼 빅스비
사실 갤럭시 노트9이 출시된 이후에 하드웨어 성능이 강화된 것과 스타일러스펜인 S펜 기능이 추가된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고 지적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빅스비가 더욱 중요해졌죠. 구글 어시스턴트와는 독자노선을 걸으니, 거기서 차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까놓고 보니 실망스럽다는 느낌이 듭니다. 연동 가능한 서비스가 더욱 늘어야 할 것으로 보이고, 또 버그로 보이는 것도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언팩 때 시연했던 기능들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것은 소비자와의 신뢰를 깨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다른 국가들에선 한국보다 더 잘될 수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한국에서 우버가 안되는 것처럼 각 나라마다 서비스 환경이 다를 수 있으니, 미국 기준으로 시연한 언팩 행사의 기능을 한국에서 모두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 것이 무리일 수 있습니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 입장에서는 출시를 앞두고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에서의 서비스를 그리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삼성전자는 “(구글 같은) 플랫폼을 가져보는 나라가 되고 싶다”며 빅스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정작 한국에선 ‘길 찾기’도 안되는 인공지능 어시스턴트 플랫폼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빅스비를 사용하면 많은 위치정보를 비롯한 수많은 개인정보가 삼성에 쌓입니다. 빅스비 개인정보 관련 이용약관을 보면, 개인정보의 과도한 수집으로 비판을 받았던 구글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사용자들이 개인정보를 구글이나 빅스비 같은 플랫폼에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편리한’ 서비스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개인정보는 많이 수집하면서 사용자 입장에서 기대 이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삼성 쪽은 “앞으로 파트너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연동되는 서비스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삼성은 또 오는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삼성개발자콘퍼런스에서 무언가를 더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때 소프트웨어개발 키트를 공개해 빅스비 생태계를 넓히겠다고도 했죠. 그때, 그 전이라도 진화된 빅스비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home01.html/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