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택시. 케이에스티(KST)모빌리티 제공.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리던 지난 9일 밤이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당직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니,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이가 있었다. 민트색 옷을 입고 민트색 택시 앞에 서 있는 택시기사였다.
“마카롱 택시 예약하신 박태우 고객님이십니까? 어서 타십시오.” 반갑게 인사한 그는 우산을 받쳐주고 택시 뒷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마카롱 쇼퍼 양○○입니다. 목적지까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음악이나 히터의 조정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기자는 이날 ‘마카롱 택시’를 탔다. 케이에스티(KST)모빌리티가 오늘(15일) 공개시범서비스를 개시한 예약제 택시다. 체험단 100명을 대상으로 하되, 출발 지역을 서울 강남·서초·송파구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이보다 앞선 9일 탈 수 있었던 건, 지역 제한이 없는 비공개시범서비스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야간 당직을 위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앱을 열어 출발장소(회사)와 도착장소(집)를 지정하고 예약일정(출발시각)을 선택했다. 예약은 현재시각 기준 1시간 이후부터 48시간 이내에만 가능하다. 차종을 고른 뒤(현재는 중형만 가능), 부가 서비스도 선택할 수 있다. 현재는 생수·마스크·카시트·우산 등을 고를 수 있다. 앞으로는 커피나 팻 캐리어 등도 추가할 예정이라 한다. 결제는 미리 등록한 신용카드로 하거나, 내릴 때 직접 결제가 모두 가능하다. 예약비를 별도로 받지 않기 때문에, 요금은 일반 택시처럼 미터기 운임만 받는다.
마카롱택시의 택시등. 케이에스티(KST)모빌리티 제공.
택시 예약시간 50분 전 알림이 왔다. 택시가 나를 태우러 오고 있다는 내용이다.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에서 출발해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도착까지 예상 소요시간(20분)과 차종·차량 번호와 기사의 이름·사진이 함께 떴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기사와 통화도 할 수 있다. 택시가 일찍 출발한 때문인지, 차량이 회사 근처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앱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택시는 예약시간 10분 전 신문사 앞에 도착했다.
마카롱 택시는 흰색에 민트색으로 도색이 돼있다. 택시 갓등도 사각뿔 모양이 아니라 타원형이다. 서울시 법인택시는 모두 꽃담황토색으로 칠해야 하지만, 마카롱택시는 서울시와 긴 줄다리기 끝에 처음으로 외관규제에서 벗어났다. 승객들은 “이 차 진짜 택시 맞냐”고 자주 묻는다고 한다.
택시 안은 검정색 시트에 민트색으로 포인트를 줬고, 민트색 쿠션과 무릎담요가 놓여 있었다. 휴대전화 충전케이블과 와이파이 에그도 설치돼있다. 엔씨소프트에서 제공받은 ‘스푼즈’라는 캐릭터 브랜드 상품이다. 이밖에 디퓨저가 설치돼있고, 기사에게 요청하면 생수나 물티슈도 제공된다. 모두 무료다.
마카롱택시가 차별점으로 삼는 것은 ‘기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다. 오래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선 택시산업이 ‘운수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마카롱택시 역시 이동 자체보다는 이동과 연계된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카롱 택시는 마트에서 주문한 물건을 픽업한 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거나, 아침에 간단한 빵과 음료를 택시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것, 영화표와 함께 택시를 예약하는 것 등을 앞으로의 사업모델로 삼는다.
마카롱택시의 뒷좌석에 놓인 쿠션. 케이에스티(KST)모빌리티 제공.
이를 위해선 기사의 ‘서비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카롱 택시가 기사를 ‘쇼퍼(Chauffeur)’라고 이름 지은 이유다. 쇼퍼는 영국에서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사를 뜻한다. 쇼퍼들은 별도로 설립한 서비스 교육회사에서 친절교육을 받는다. 브랜드·상황별서비스·심폐소생술 등도 배운다. 쇼퍼들은 월급제를 적용받는다. 성과급도 지급된다. 운송실적과 함께 운행정보도 성과급 지급 기준이다. 급정거·급출발을 했는지 등이 차량에서 전송되어 운행정보로 축적된다고 한다.
기사의 생각은 어떨까? ‘쇼퍼’ 양아무개씨는 “타는 분들마다 매우 만족해 하셔서, 그동안 많은 교육을 받은 쇼퍼들이 정식 서비스가 시작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영국의 블랙캡, 미국 뉴욕의 옐로우캡 기사들이 망했지요.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는 것을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법인택시 4년, 개인택시를 11년 했는데 지난해 처분하고, 운전에 관한 다른 일을 찾아보다 마카롱을 택했습니다.” 그는 케이에스티모빌리티가 택시회사를 직접 인수해 운영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카카오나 카풀 회사들은 수수료만 챙기려고 하지, 직접 택시를 바꿀 생각은 안 하잖아요. 마카롱은 택시를 바꿔서 승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니까 마음에 들었죠.”
양씨는 이밖에도 택시-카풀 논란부터 택시 서비스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늘어 놓았다. “한번 시작하면 3시간은 말할 수 있다”던 그는 “손님 제 얘기가 불편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느새 차가 집 앞에 도착하자, 양씨는 스마트폰에 미터기에 찍힌 요금을 입력한 뒤 “5초만 기다려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고 아파트 현관까지 우산을 받쳐줬다.
소감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분 좋다’ 정도로 요약될 것 같다. 11인승 카니발로 실시간 렌터카 호출서비스를 하는 ‘타다’나 고급택시를 탔을 때 ‘편하다’ ‘안락하다’ 등의 느낌을 받았다면, 마카롱 택시는 민트색이 주는 산뜻함과 쇼퍼들의 친절에서 오는 ‘기분 좋음’이라는 감정이 컸다. 특히 ‘예약제’가 신선하고 편리했다. 실시간 호출 서비스는 차량이 잡힐지 말지 걱정해야 한다. 잡혀도 탑승시간을 예측하기 힘들다. 예약제는 마음을 편하게 한다. 저녁 회식을 시작하면서 마칠 시간을 예상해 미리 예약해두거나, 가족 나들이 등 미리 예정된 일정에 사용한다면 무척 편리할 것이다. 마카롱택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불러주기’도 가능해, 부모님이나 아이들이 따로 이동할 때 요긴하겠다.
다만 택시가 부족한 게 당장 문제다. 기자 역시 예약가능한 시간대에 3차례 예약을 시도했으나 택시를 잡는 데 실패했다. 현재 운영중인 택시가 20대다. 올해 안에 500대로 늘리겠다고 하지만, 충분한 규모라고 하긴 어렵다. 택시가 100% 예약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길에서 택시를 잡는 손님들도 태워야 하기 때문에 배차 알고리즘을 짜는 일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예약 호출장소로 이동하며 소요되는 시간과 연료 탓에 운송원가가 늘어나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시범서비스 기간엔 예약비를 따로 받지 않지만, 향후 예약비가 추가될 경우 이용자들이 선택할지도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
마카롱택시는 오늘(15일)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 앱을 공개하고 공개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시범서비스 결과를 바탕으로 정식 서비스 출시 시점을 정할 계획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