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대상 설문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80% 가량이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쪽에 부담을 주는 법으로 꼽혀왔다는 점에서 뜻밖의 조사 결과로 여겨진다. 경영자 단체 조사에서 90% 이상 기업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결과와 대조적이다.
재단법인 경청(이사장 장태관)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연 매출 1억원 이상 중소기업 1천개를 대상으로 실시해 4일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 중소기업 가운데 79.4%가 중대재해처벌법에 ‘찬성한다’(매우 찬성 6.6%, 찬성하는 편 72.8%)고 밝혔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20.3%(매우 반대 1.9%, 반대하는 편 18.4%)였다. 업종별로는 도매 및 소매업에서 86.2%로 가장 높았고,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79.2%, 정보통신업 79% 순이었다. 조사는 지난 6~7월에 이뤄졌으며, 조사원을 활용한 사업체 방문조사(99.5%)를 원칙으로 삼았다. 표본 추출에선 업종, 매출, 직원 수 따위를 고려해 균등 할당하는 방식을 따랐다고 경청 쪽은 전했다.
재단법인 경청은 중소기업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법률과 행정 서비스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기존 경제단체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내 기업 654곳(응답 기준)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며 2020년 12월 내놓은 결과에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에 대해 90.9%가 ‘반대’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관련 단체가 중대재해처벌법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 1월 시행됐다.
이번 조사 주체인 재단법인 경청 쪽도 이번 조사 내용을 예상 밖의 결과로 여기고 있다. 박성수 경청 팀장은 하청 업체에 짐을 떠넘기는 불평등한 하도급 거래 관계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했다. 균등 할당 방식으로 표본을 추출한 이번 조사에서 대상 기업의 절반 이상이 연 매출 100억원 미만으로 영세한 수준이었다고 박 팀장은 전했다. 그는 “응답자가 직원이기 때문일 수 있겠다 싶어 들여다봤더니 대부분 대표이사, 전무급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에서 찬성 뜻을 밝힌 기업들이 찬성 이유로 앞세운 것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하도급 업체 등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44.7%), ‘사업주가 실질 운영하는 사업장 내 안전의 엄격 관리 및 안전보건 분야 투자 촉진을 위해’(22.5%) 순이었다. 반대 의견으로는 ‘법 준수를 위한 예산·전문인력·전담조직 확보 어려움’(30.9%)이 가장 많았고, ‘고의나 과실이 없는 재해도 책임자 처벌이 과도함’(25.3%)이 뒤를 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필요 사항을 물은 질문에는 법에 대한 찬반 여부에 따라 답이 달랐다. 반대하는 입장에선 ‘고의 중과실이 없는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경영책임자 처벌 면책 규정 마련’을 가장 높게 꼽았고, 찬성 쪽에선 ‘경영책임자 의무 및 원청의 책임 범위 구체화’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