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회장 권한대행 겸 비상대책위원장(가칭)으로 행정학 교수 출신이자 정치인인 김병준(68)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추천했다. 기업 경영 경험이 전혀 없는 인사가 재벌 대기업의 이익단체인 전경련의 수장을 맡는 것은 1961년 전경련 출범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17일 전경련과 정치권에 따르면, 전경련 회장 후보 추천위원장인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은 지난 16일 현 회장인 허창수 지에스(GS)그룹 회장에게 김 회장을 차기 회장 권한대행으로 추천했다. 이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적절한 회장 후보가 나타나지 않자 김병준 회장에게 권한대행으로 전경련을 이끌면서 차기 회장을 물색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오는 23일 정기총회를 앞두고 허창수 회장이 사임을 밝힌 상황에서 차기 회장을 찾고 있었다. 전경련은 이번 정기총회에서 김 회장이 권한대행으로 선임되면 조직 개편과 차기 회장단 재구성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구성해 위원장을 맡길 예정이다. 주로 재벌 대기업 회장과 최고경영자(CEO) 400여명이 회원으로 구성된 전경련은 2년마다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회원 추천으로 회장 선임 절차를 밟는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은 뒤 2011년 3월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는 허창수 현 회장에 이르기까지 역대 회장직은 모두 재벌 총수가 맡아왔다. 법적으로는 사단법인의 지위를 갖고 있는 전경련은 정치권과 정부를 상대로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관철하는 압력단체로, ‘정경유착’을 주도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 임기 말에 벌어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는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에 회원사들이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관여해 물의를 빚었다.
이 때문에 삼성, 현대차, 엘지(LG), 에스케이(SK) 등 4대 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하고, 문재인 정부 임기 5년 동안에는 다른 경제단체외 비교해 위상과 구실이 크게 약화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차기 회장 후보군 물색에 난항을 겪어왔다. 한 경제계 인사는 김병준 회장을 권한대행으로 영입하려는 전경련의 시도에 대해 “과거 위상을 되찾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윤석열 정부와 가까운 정치권 인사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보 등을 지낸 김 회장은 지난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 말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로 하차했다. 2018년 7월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으며 지난 대선 때 국민의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 특별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정훈 기자,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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