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한-미FTA 재검토 공식 시사
한-미 FTA 재협상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대한 무역적자 증가, 미국인들 기대한 바 아냐”
“모든 무역협정 재검토” “모든 법적조처 사용”
WTO도 배척하며 일방주의적 태도 노골화
산업부 “이전 입장과 동일” “대응책 마련”
한-미 FTA 재협상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대한 무역적자 증가, 미국인들 기대한 바 아냐”
“모든 무역협정 재검토” “모든 법적조처 사용”
WTO도 배척하며 일방주의적 태도 노골화
산업부 “이전 입장과 동일” “대응책 마련”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해왔고, 트럼프 행정부는 약속을 이행할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정책 보고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와 일방주의적 통상정책 기조가 재확인됐다. ‘새롭고 더 나은 무역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 급증을 적시하고 협정들의 전면 재검토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이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현지시각) 공개된 무역대표부의 ‘2017년 무역정책 어젠다와 2016년 연례보고서’에 대해,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약을 무역대표부라는 정부기관의 입장으로 관철시킨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체적인 정책 방향이 담긴 것은 아니나, 뚜렷한 보호주의·일방주의 색채와 자유무역에 대한 ‘피해의식’은 상대국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통상 전문 변호사 출신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 지명자는 트럼프와 가치관을 완전히 공유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보고서의 주요 타깃은 대미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보는 중국이라고 할 수 있으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비판적 서술도 주목된다. 무역적자를 자유무역협정과 함께 몇 차례 거론했다. 특히 앞부분의 ‘최우선 과제’라는 장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만들어진 가장 거대한 무역협정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발효와 한국과의 심각한 무역적자가 우연히 겹친다”며 “(발효 이후) 한국과의 무역적자는 두 배가 됐다. 물론 이는 미국인들이 기대한 바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미국의 무역적자는 급증한 반면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멕시코·캐나다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도 무역적자를 늘렸다고 했다. 바로 그 뒤에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평가하면서 결론으로 “분명히, 여러 무역협정에 대한 접근법을 심각하게 재검토할 때가 왔다”고 했다. 또 “불공정 행위를 계속하는 교역국에 대해선 모든 가능한 법적 조처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다양한 무역협상·협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격정 토로’ 수준이다.
세계 무역 질서를 규율하는 세계무역기구에 대한 반감과 배척 의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점도 우려할 만하다. 보고서는 “미국인들은 세계무역기구의 결정이 아니라 오로지 미국 법에 따른다”, “트럼프 행정부는 통상 문제에서 미국의 주권을 공격적으로 지켜내겠다”고 했다. 국제적 규율과 질서 따위는 무시하고 오로지 자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무역 질서를 끌고 가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미국의 일자리를 죽이는 나쁜 협정”이라고 비난한 바 있으나, 이후 그가 주로 공격한 것은 중국이나 나프타였다. 이번 보고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중국이나 나프타 못지않은 ‘해결’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미국이 무역 질서의 공격적 재편을 기정사실화한 만큼 한국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는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 지난 2년간 수렁에 빠졌던 수출이 2월에 20.2%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하면 앞날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진다. 산업연구원의 문종철 연구위원은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해온 이야기를 다시 해 새로운 내용은 없고, 일부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성과를 인정한 대목도 있다”면서도 “세계무역기구에 대한 ‘저항’ 대목 등을 볼 때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보인다”고 분석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과 관련한 직접적 언급은 없고 이전에 표명했던 미국의 입장과 동일하다. 계속 대응책을 마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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