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대선을 앞두고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1999년 안철수연구소(이하 안랩)가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안 후보가 인수한 것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BW를 이용한 편법상속과 똑같은 수법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국민의당은 근거없는 흑색선전이라며 반박해 양쪽 공방이 뜨겁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재벌 총수일가의 편법·불법과 같은 수법으로 안 후보가 안랩의 지분을 늘려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고 비판했다. 제윤경 의원도 “안 후보의 안랩 BW 저가인수는 배임죄로 결론난 삼성SDS 사건과 판박이로 재벌 3세의 편법 재산증식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은 이에 대해 “2012년 대선 때 강용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제기한 사안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확인됐는데도 흑색선전을 한다”고 반박한다.
BW는 고정된 이자를 받는 회사채와, 일정기간 뒤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함께 붙은 금융상품이다. 상당수 재벌 3세들이 1990년대 말 비상장 계열사의 BW를 헐값에 인수하는 수법으로 막대한 자본이득을 얻어 재벌의 편법·불법 상속수단으로 널리 알려졌다. 삼성이 1999년 삼성SDS의 BW를 이재용 부회장 등에게 헐값으로 발행했다고 배임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삼성SDS BW사건의 쟁점은 네가지다. 첫째는 삼성SDS의 주주인 삼성 계열사들이 그룹 미래전략실의 지시로 BW 인수를 포기하고 이재용 부회장 오누이에게 몰아주기를 한 점이다. 둘째는 장외시세가 주당 5만원을 넘는 상황에서 7천원대의 헐값으로 BW를 준 점이다. 셋째는 BW 헐값인수를 통해 얻은 부당이득이 2014년 말 삼성SDS 상장시점 기준으로 5조원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넷째는 삼성SDS의 BW 발행목적이 애초부터 이 부회장의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안랩 BW사건도 삼성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안랩 BW사건의 발단은 안 후보가 1999년 10월 자신이 대주주인 안랩이 발행한 만기 20년짜리 BW 25억원어치를 전량 인수한 것에서 시작됐다. 연 10.5%의 할인율이 적용돼 안 후보가 실제 회사에 지급한 돈은 3억4천만원이었다. 안 후보는 또 안랩 주식 25억원 어치를 주당 5만원에 살 수 있는 권리를 함께 얻었고, 실제 1년 뒤 권리를 행사했다. 다른 주주들인 삼성SDS(지분 23%)와 산업은행(15.4%) 등은 모두 BW 인수를 포기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삼성의 ‘이재용 몰아주기’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많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삼성과 산업은행은 안랩이나 안 후보의 지시를 받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BW 인수 포기는 독자 판단으로 봐야 한다”면서 “다른 주주들도 안 후보의 BW인수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신주인수가격 5만원은 외부기관이 평가한 3만1976원에 비해 높고, BW 발행 직전 유상증자 때 발행가액인 주당 5만원과 같다. 금융전문가들은 “비상장 벤처기업의 경우 기업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별도의 장외시장 거래가 없는 상황에서 직전 유상증자 발행가격과 같기 때문에 ‘이재용의 헐값인수’와 같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안랩은 이후 주주에게 주식을 거져 나눠주는 무상증자를 하고, 주식 액면가를 5천원에서 500원으로 쪼겠다. 주당 가치가 낮아지면서, 안 후보의 주식인수가격도 1710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하지만 이는 애초 정해진 계산법에 따른 것이어서 역시 헐값인수로 보기 힘들다. 안 후보는 1년 뒤인 2000년 10월 25억원을 주고 안랩 주식 146만여주를 추가 취득했다.
안랩은 2001년 9월 상장을 하면서 주당 공모가격으로 2만3천원을 적용했다. 안 후보가 얻은 자본이득은 주식인수가격과 공모가격의 차이 기준으로 311억원(상장시점 기준)에 달한다. 애초 주식인수자금 25억원 기준으로 12.5배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안 후보는 삼성과 경우가 달라 이를 부당이득이라고 단정짓는 것도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안랩은 BW 발행 1년 뒤인 2000년 10월 안 후보가 보유한 회사채를 조기 상환했다. 애초 회사가 돈이 필요해 BW를 발행한 게 아님을 짐작케한다. 안랩은 2001년 상장 때도 공시를 통해 “BW는 안철수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 후보는 BW 인수를 통해 지분을 39.1%에서 54.5%로 높였다.
그럼 안 후보가 BW를 단독 인수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전문가들은 안 후보의 BW 단독인수(1999년 10월)→무상증자(1999년 10월)→주식액면 분할(2000년 2월)→안 후보 신주인수권 행사 및 지분 확대(2000년 10월)→안랩 상장(2001년 9월)→안 후보와 다른 투자자 자본이득 순으로 이어지는 일들이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 속에 진행된 것으로 본다. 한 회계사는 “벤처 특성상 대주주의 이름이 기업가치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다른 주주도 안 후보의 지분을 높이는 것이 향후 상장을 통한 투자이익 회수에 유리하다고 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안랩 BW발행 목적이 안 후보의 지분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데 주목한다. 김 교수는 “안랩 BW를 헐값 발행으로 보기는 힘들지만, 당시 안랩과 삼성SDS를 포함해 거의 100개 이상의 대기업이 BW를 발행했다”면서 “안 후보의 BW 인수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해도 다른 재벌과 마찬가지로 대주주의 지분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안 후보가 솔직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진영이 안랩 BW발행 논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모두 대선공약으로 재벌개혁을 강조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안 후보는 특히 상법개정을 통한 재벌총수의 전횡 차단과 함께 총수일가 일감몰아주기 엄단 등 재벌의 편법상속에도 엄격한 제재를 약속하고 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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