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창립 5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미래 전략에 대해 밝히고 있다. 포스코 제공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어 사임 의사를 밝혔다.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둔 시점에 터져나온 사의 표명이라 배경을 둘러싸고 추측이 무성하다.
권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권 회장은 이사회 직후 기자들에게 “저보다 더 열정적이고 능력 있고 젊고 박력 있는 분에게 회사 경영을 넘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부분을 이사회에서 흔쾌히 승낙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2014년 초 취임해 지난해 초 연임에 성공했으나 전임자들처럼 잔여 임기를 남겨 놓고 ‘중도하차’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2020년 3월까지가 임기였다.
재계에서는 권 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은데다 첫 선임 때 권력 실세의 입김으로 회장에 올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중도하차설이 끊이지 않았다. 권 회장은 포스코건설의 국외기업 부실 인수 의혹 등에 대한 검찰 수사와 국세청 세무조사로 조직이 어수선해지자 사임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안에서는 권 회장이 실적 개선과 세계철강협회 부회장 선임 등으로 과거처럼 ‘교체’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과 정권이 바뀌어 결국 물러날 것이라는 견해가 엇갈렸다. 포스코는 정권 교체기마다 최고경영자가 교체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왔다. 박태준 초대 회장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불화로 자리에서 물러난 것을 시작으로 황경노 회장, 정명식 회장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뒤를 이은 김만제 회장과 유상부 회장, 이구택 회장도 정부 출범 직후 또는 중도에 사퇴했다. 이명박 정부 때 취임한 정준양 회장도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자진사퇴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선임된 권 회장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사임설이 끊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미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 해외순방 때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권 회장이 제외될 때마다 재계는 포스코 수장을 교체하려는 청와대 의중이 실린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권 회장은 정면돌파를 꾀했다. 그는 회사 창립 50돌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이오가 교체됐다’는 질문에 대해 “정도 경영을 하겠다”며 직무 수행 의지를 밝혔다.
권 회장의 사임 과정에 권력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재계에선 권 회장의 심적 압박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 수장이 옷을 벗는 구태를 이번 정부에서도 반복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권 회장의 사임 이유에 대해 건강 문제를 거론했을 뿐 정치권의 압력설이나 검찰 수사에 대해선 “전혀 관련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4년간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사업구조 개편 등으로 피로가 누적돼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조언이 있었고 다음 50년을 위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권 회장의 후임은 ‘시이오(CEO) 승계 카운슬’의 제안과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후보추천위원회가 최종 후보자를 결정하는 내부 승계 시스템에 따라 선임된다. 이와 관련해 김주현 이사회 의장은 “권 회장이 사의를 표했지만 두세 달 차기 회장을 선임하는 절차가 있을 것으로 보여 그 과정 동안에는 경영에 공백이 없도록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권 회장은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회장직을 수행할 계획이다. 차기 회장 후보로는 권 회장과 함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오인환·장인화 사장을 비롯해 최정우 포스코켐텍 사장, 황은연 전 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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