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온라인 상거래 업체인 위메프가 장시간 노동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포괄임금제’를 다음 달 폐지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포괄임금제란 연장근로·야근수당 등을 급여에 기본 포함하는 것으로, 야근과 연장근무를 당연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위메프는 “오는 7월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포괄임금제 폐지를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6월에 폐지한 뒤 임직원들의 의견을 들어 점진적으로 수정·보완할 예정이다. 포괄임금제 폐지와 관련해 노동자 쪽이 가장 우려하는 임금 삭감은 원천 차단하기로 했다. 기존에 지급되던 연장 근로 수당을 그대로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주 4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할 경우에는 법정 연장근로 수당을 지급한다.
주요 기업의 포괄임금제 폐지 결정은 위메프가 처음이다. 야근이 일상화된 사무직, 그 중에서도 아이티(IT) 업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위메프는 24시간 운영되는 온라인 상거래 업체이기 때문에 포괄임금제 폐지는 통상임금 상승 및 추가 고용 등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회사가 이를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3교대 근무형태가 빈번한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나 호텔 등 서비스업계서도 관심을 가질 만 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메프는 “임금 상승분은 감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업체 관계자는 “시뮬레이션 결과 최소 연간 수십억원 이상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불필요한 야근 및 휴일근로를 줄여 인건비를 아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길게 보면 포괄임금제 폐지가 회사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위메프는 업무 효율을 높여 불필요한 야근 등을 줄이는 쪽으로 내부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또한 부득이하게 연장 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개발자 등의 경우에는 주 52시간까지는 연장근로 수당을 주고, 초과 근로에 대해서는 대체휴가를 주는 등의 방안을 찾고 있다. 추가 고용도 추진한다. 올 상반기 80여명의 정규직 신입사원을 공개 채용한데 이어 하반기에도 50명 이상을 추가로 뽑을 예정이다. 전체 임직원 수도 지난해 말 기준 1485명에서 5월 현재 1637명으로 10% 이상 늘어난 상태다. 장시간 노동의 해소가 추가 고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부의 예측이 현실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동안 포괄임금제를 두고는 사실상 ‘공짜 야근’을 강요하고 장시간 노동을 불러오는 제도란 비판이 많았다. 특히 노동계는 “효율적 경영에만 초점을 둔 대표적인 노동탄압 제도”라고 꼬집어왔다. 2016년 9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낸 ‘사무직 근로시간 실태와 포괄임금제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100인 이상 사업장 206곳 가운데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이 절반에 가까운 41.3%였다. 이는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졌다. 노동시간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는 업체 노동자의 경우 월 초과근로시간이 평균 10시간 43분인 반면 포괄임금제를 시행하는 업체 노동자의 월 초과근로시간은 이보다 많은 13시간 9분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사무직 종사자들이 장시간 노동의 피해를 받아왔다. 2016년 12월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 운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가운데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472개 업체가 관리직(71.0%)과 사무직 종사자(69.4%)를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해왔다. 생산직(30.1%)보다 두배 이상 높은 수치다.
포괄임금제는 정부도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다음 달 ‘포괄임금제 지도지침’을 내놓을 예정인데, 포괄임금제를 도입할 수 있는 경우를 한정하면서 일반 사무직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원천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위메프 결정으로 다른 기업들이 난처한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 대부분 7월에 도입되는 주 52시간 노동제 도입을 위한 준비에 매달릴 뿐 포괄임금제 폐지까지 검토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신세계처럼 포괄임금제를 도입하지 않은 회사는 사정이 괜찮지만, 대다수 대기업은 포괄임금제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대형 유통회사 관계자는 “주 52시간 노동에 맞춘 제도 개선을 준비중인 상황이라, 포괄임금제까지는 살펴보지 못한 상태”라며 “정부의 구체적 지침이 나오면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동계 쪽은 일단 긍정적 반응이다. 민주노총 김은기 정책국장은 “포괄임금제 폐지를 한다 해도 워낙 근로계약의 변수들이 많아 실제 노동자에게 유리한지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도 “기업 입장에선 정부 지침이 나오기 전에 발빠르게 대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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