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52시간이라고요? 한국도 선진국인데, 그렇게 많이 일한다니요.”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한국이 다음달 1일부터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시키기로 했다는 말에 “어떻게 그렇게 오래 일하는지 알 수 없다. 52시간으로 줄여도 여전히 높은 것 같다”며 “한국의 노동 조건에 대해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정보를 얻게 됐다”며 혀를 내둘렀다.
크루그먼 교수가 이런 말을 한 것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주최로 열린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 특별대담에서였다. 크루그먼 교수는 30분 동안 주제 강연을 한 뒤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사회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대담을 나눴다.
대담에서 권 부회장은 애초 특별대담의 주제인 양극화나 빈곤 해소에 관한 질문보다는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한국 정부의 노동정책을 꼬집는 질문에 집중했다. 크루그먼 교수가 한국의 노동시간에 대해 놀라움을 드러낸 것도 권 부회장이 “정부가 일률적으로 주당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했다”는 데 대한 의견을 묻는 과정에서 나왔다. 크루그먼 교수는 “노동시간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2위고, 미국은 1783시간이다.
그는 “한국에선 노조의 힘이 강하고 노조에 힘을 더 실어주면 소수의 기득권자들이 이익을 본다”는 권 부회장의 지적에 대해서도 “미국은 민간 부문의 8%만 노조에 참여하고 있고 더 많은 노조활동이 필요하다. 미국에선 노동자들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사회안전망을 약화시키는 실수가 있었다”고 했다. 앞서 그가 소득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인적자원 훈련, 최저임금 인상, 노조의 단체협상력 강화, 빈곤층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을 꼽은 데 대한 부연 설명이다.
또한 크루그먼 교수는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은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 중산층에는 막대한 이익을 만들어줬지만, 가난한 국가들은 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선진국의 노동자 계층은 소외받았다”며 “뒤처진 빈곤한 사람들을 세계 경제에 포함시키지 못하면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을 여러 차례 비판하면서, 특별히 미-중 간 무역분쟁에 대해 “세계 무역체제는 역사적·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장 성공적인 외교적 활동이었지만, 주요 주체 중 하나가 규칙을 따르지 않겠다고 하면 붕괴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이 관세를 높이고, 또다른 국가들도 보복관세를 물리는 상황이 반복되면 통제를 벗어날 수밖에 없고, 한국도 이런 상황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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