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그룹 총수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 계열사 대표이사 직급을 부회장이나 사장급으로 올리고, 30~40대 임원을 주력 사업부문 대표로 배치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랜드는 3일 이같은 내용의 조직·인사개편안을 발표했다.
박성경 부회장 퇴진이 가장 두드러진다. 박성수 회장 동생인 박 부회장은 퇴진하고 이랜드재단 이사장을 맡는다. 박 부회장은 제롤라모와 이랜드월드 대표를 지냈고 2006년부터 12년간 부회장을 맡으며 박 회장과 함께 그룹 경영을 이끌어 왔다. 2017년 아들 윤충근씨가 허위 정보를 퍼뜨려 자신이 운영한 모바일 앱 주가를 끌어올린 뒤 되팔아 40여억원의 차익을 얻은 혐의(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위반)로 구속돼 1·2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다만 그룹 관계자는 “(박 부회장 교체는) 내년 창사 40년을 맞아 세대교체를 이루고 계열사 경영 독립성을 강화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의미”라고 선을 그었다. 박 부회장은 스스로 사임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과거 중화권 진출을 진두지휘한 만큼, 중국과 아시아권 경영진과의 네트워킹 역할은 이어가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랜드리테일·이랜드월드·이랜드파크 등 주력 계열사 대표 직급이 격상되며 박성수 회장도 경영 전면에서 한발짝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췄다. 최종양 이랜드리테일 대표는 사장에서 부회장으로, 김일규 이랜드월드 대표는 부사장에서 부회장으로, 김현수 이랜드파크 대표는 전무에서 사장으로 직급이 올랐다. 또 이은홍 이랜드베트남 대표를 아시아권 대표로 임명해 인도·베트남 시장 진출에 힘쓰도록 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운영 체제를 강화하고 독립경영 체제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박 회장은 계열사 및 사업부별 자율경영이 될 수 있도록 미래 먹거리 발굴 및 차세대 경영자 육성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 회장 등은 일찌감치 계열사 대표 자리에서는 물러났지만, ‘은둔의 경영자’로 불려 전문경영인 체제 정착이 더뎠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계열사 대표 권한을 강화한 것은 이런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랜드는 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명망 있는 사외이사 영입을 통해 투명경영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30~40대 젊은 임원 일부를 주력 부문 대표에 전진 배치하며 세대교체도 일부 시도했다. 이랜드월드 패션 부문은 최운식(40) 상무가 이끌게 된다. 최 상무는 스파오(SPAO) 사업 본부장을 맡으며 실적을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랜드파크의 외식부문 대표는 김완식(35) 외식 본부장이 맡는다. 외식시장 사정이 어려워지는 가운데 애슐리 등 대표적인 외식 브랜드에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친 실적을 인정받았다고 이랜드는 설명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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