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내놓은 이른바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강화 방안’은 상법상 의무사항을 따르는 내용일 뿐이어서 뚜렷한 쇄신 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는 다수 지적이 제기됐다. 시장에서는 한진칼 2대 주주(10.81%)인 케이시지아이(KCGI, 강성부 펀드)의 제안보다 “매력적이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진그룹은 지난 13일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며 한진칼 사외이사 수를 1명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사장, 석태수 대표이사 등 사내이사 3인에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를 1명 늘리겠다는 것이다. 한진그룹은 이 방안을 “쇄신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사회 안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외이사 수를 늘린다고 이사회의 독립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총수 일가와 측근들의 입김이 반영되는 경우는 무척 많다. 현재 한진칼 사외이사들도 대부분 조 회장과 가까운 인물들이다. 김경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회계사)은 “사외이사 추천권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사외이사 선임에 회사 쪽 의견이 반영되는 구조라면 사외이사가 몇 명이 되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재벌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지주회사와 계열사 26곳의 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를 보면, 26곳 중 21곳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에 총수 일가와 최고경영자(CEO)가 들어가 있었다.
한진그룹 개선안은 상법상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것일 뿐이다. 한진칼은 지난해 말 단기차입금을 1650억원 늘려 자산 총 규모를 2조원 이상으로 늘렸고, 이에 따라 상법상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한진 쪽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감사위원회를 둔다고 설명했지만, 이 또한 자산 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의 의무다. 이상훈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 센터장(변호사)은 “한진칼이 자산 총 규모 2조원을 넘게 됨에 따라 법상 의무대상이 되는 각종 장치를 경영 투명성 대책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한진그룹안은 케이시지아이안만큼 매력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강성진 케이비(KB)증권 연구원은 14일 보고서를 내어 “한진그룹 제시안은 케이씨지아이 요구 일부만 수용하고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며 “지배구조위원회를 통한 주요 경영사항 사전 검토·심의, 범법을 저지르거나 회사 평판을 실추시킨 자의 임원 취임 금지 등 케이시지아이 안의 일부 내용은 빠지거나 상당히 완화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 관계자는 “사외이사 후보는 전문성·독립성·다양성 등을 고려해 선정하고 있다”며 “올해 설치할 계획인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 내부거래위원회 등이 (케이시지아이가 요구한) 지배구조위원회의 역할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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