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LG그룹 2대 회장을 역임했다. 사진은 1985년 4월 구 명예회장이 금성정밀(현 LG이노텍) 광주공장 준공식에서 공장을 둘러보는 모습. 2019.12.14. 연합뉴스
1947년 락희화학공업, 1950년 금성사 설립을 시작으로 현재 엘지(LG)화학과 엘지전자 등으로 이어온 엘지그룹은 보수적인 ‘장자 승계’ 원칙을 여전히 지켜오며 4대째 경영을 이어오고 있다. 엘지의 구씨 일가는 동업 관계이던 허씨 일가와 큰 갈등 없이 엘지와 지에스(GS)로 계열 분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4일 별세한 구자경 엘지 명예회장은 1대 회장인 구인회 창업회장이 1969년 12월 세상을 떠난 직후인 1970년 2대 회장을 맡았다. 구 창업회장의 6남4녀 중 구 명예회장은 장남으로, 그의 나이 45살되던 해였다. 25년만인 1995년 구 명예회장은 세대교체를 앞세우며 70살의 나이에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 재벌가에선 첫 ‘무고(탈없음)’승계로 재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회장에서 물러날 때 ‘창업 멤버’로 꼽혀온 원로 회장단도 동반퇴진을 단행한 바 있다. 후계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3대 회장을 맡은 건 그의 장남 구본무 회장이었다. 지난해 5월 세상을 떠난 구본무 회장은 과장직부터 시작해 1995년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 20여년간 실무 경험을 쌓았다. 구본무 회장은 2004년 자신의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아들인 구광모 현 엘지 회장을 장자로 입양했다. 1994년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뒤 엘지가의 ‘장남 승계’라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였다. 구본무 회장에게는 그 외 두 딸이 있다. 구본무 회장이 지난해 별세한 뒤 구광모 회장은 40살의 나이로 4대 회장에 올랐다. 엘지가의 장자 승계 원칙을 두곤 다른 재벌가와 달리 분쟁이 없는 배경이라는 평가와 여성의 경영 참여를 배제하는 후진적 행태인 만큼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나온다. 국내 재벌가들의 ‘혈족 중심’ 경영에 보수적인 가풍이 더 강조돼 있는 것이다.
엘지의 구씨 일가는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현재 지에스그룹의 허씨 일가와 동업 관계를 이어오다 2004년 엘지와 지에스로 계열 분리됐다. 구씨 쪽은 전자와 화학, 통신 등을 맡고 허씨 쪽은 정유와 유통, 홈쇼핑, 건설 등을 맡기로 했다. 동업 관계도 이례적이지만 무탈하게 계열 분리가 이뤄진 점도 재계에선 화제였다. “한 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구 창업회장의 뜻이 이어진 결과라고 엘지는 설명했다.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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