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3 05:00
수정 : 2020.01.1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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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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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들어보니
엑스파일 사건 뒤 2년간 활동
“이학수 등과 5~6회 모임 진행
성과 내기엔 횟수 자체가 적어”
이건희 퇴진 뒤 흐지부지 해체
“준법감시위 직접조사는 나아진 것
내부정보 취약해 실효성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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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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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계열사들의 준법 체계를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로 꾸려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가 지난 9일 운영 방침을 밝힌 뒤 과거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이하 삼지모)’ 활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6년 삼성에 비판적인 외부 인사들로 꾸려진 뒤 2년간 활동하다 사라진 조직이다. <한겨레>와 만난 삼지모 회원들은 당시 활동이 사실상 실패했다고 아쉬워하며 14년만에 부활한 외부 기구인 감시위에는 걱정과 기대를 함께 내놨다.
삼지모는 지난 2005년 이른바 ‘삼성 엑스파일’ 사건이 터진 이듬해 삼성이 사회의 ‘쓴소리’를 듣겠다며 내놓은
쇄신책 중 하나였다. 출범 2년 뒤 ‘이건희 비자금 사태’가 터지면서 흐지부지 사라졌다. 활동 내용도 삼성만 회의록을 작성한 터라 외부에는 그 내용이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삼지모와 감시위는 14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있지만 △삼성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외부 인사들로 꾸려졌고 △삼성과 독립된 외부 기구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다만 감시위는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을 꾸리고 7개의 삼성 계열사들과 협약을 맺어 불법 행위에 대한 직접 조사까지 수행한다고 한 터라 사실상 충고 모임 수준의 활동만 한 삼지모와는 차이가 있다. 복수의 삼지모 회원이 털어놓은 삼지모 활동은 비교적 단순했다. 삼지모에는 신인령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김형기 경북대 교수(당시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 황지우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 시민사회 인사 8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당시 삼성 2인자로 꼽히던 이학수 삼성 부회장 등 그룹 최고경영진과 두달에 한번꼴로 모여 2시간 정도 회의를 했다고 한다. 장소는 처음에는 삼성그룹 내 회의실에서 진행됐지만 내실있는 논의를 위해 일반 음식점으로 장소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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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논의 내용은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에게 속기록 형태로 ‘직보’됐다고 한다. 하지만 삼성이 그 내용을 얼마만큼 수용했는지에 대해선 삼지모 회원들도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삼지모가 엑스파일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삼성의 국면전환용이라거나 ‘들러리’라는 평가가 당시에 나온 이유다. 김형기 교수는 1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삼성이 쓴소리를 듣겠다는 건 전향적인 자세였다”면서도 “그걸 삼성이 어느 정도 경영에 반영했는지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삼지모 활동을 하며 모두 4가지 사항을 주문했다고 했다. △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무리한 단가 인하 중단 △무노조 경영 중단 △조세회피용이 아닌 진정한 사회 공헌 △합법적인 경영 승계이다. 그러나 이 중 사회 공헌 부분이 일부 받아들여진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무시됐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실제 현재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경영진이 수사를 받고 있거나 재판을 받고 있는 사안은 무노조 경영(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사건)이나 불법 승계와 관련된 사건(국정농단 사건·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사기 사건)이다.
삼지모는 2008년 4월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난 뒤 슬그머니 해체됐다. 이 부회장 등 핵심 경영진과 만나 의견을 제시하면 이건희 회장이 이를 보고받는 형식이었는데 회장과 부회장이 모두 경영에서 물러났으니 더이상 이들의 의견을 들어줄 대상도 없어졌기 때문으로 삼지모 회원들은 기억한다. 최열 이사장은 “모임이 꾸려진 이후 모두 대여섯번 정도 모임이 진행됐다. 만족스런 결과가 나오기엔 모임 횟수 자체가 적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감시위가 삼지모보다 한층 강력한 기구라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감시위가 ‘민감 정보’ 획득에 취약할 것이라는 점에 우려를 보였다. 김형기 교수는 “이사회나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에 보고되는 수준 자료라도 (감시위에) 제공된다면 (삼지모에 견줘선)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사회·감사위원회 보고 자료를 넘어 민감 정보까지 감시위가 접근할 수 있어야 보다 실효성 있는 활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삼지모의 한 회원은 “가장 중요한 건 내부 정보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느냐”며 “범죄자들이 검찰에 끌려가서도 (사실을) 부인하고 증거를 인멸하는데 감시위가 설령 조사 권한을 갖는다고한들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신다은 기자
khson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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