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민간 금융자본이나 정책펀드가 모험자본으로서의 한계가 뚜렷해 재계와 정치권 일부에선 ‘기업벤처캐피털’(CVC)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1년여 전부터 꾸준히 나왔다. 여기에는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시브이시가 벤처 생태계에서 핵심 자금원으로 부상하고 있는 흐름과 국내 대기업의 유휴 자금을 벤처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투영돼 있다. 하지만 시브이시 활성화는 재벌 체제의 공고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 공론화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27일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일반지주회사는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기업벤처캐피털 설립 자체를 할 수 없다. 공정거래법은 엘지(LG)와 에스케이(SK) 등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소유를 금지한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한 통로는 스타트업 지분을 40%(비상장사 기준)까지 확보해 자회사로 편입하거나 재무 투자 차원에서 지분 5%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다만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대기업집단들은 스타트업 투자에 별다른 제약은 없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최근 10년간 세계 시장에서 나타난 벤처 붐은 대기업 시브이시 덕택이 컸다. 투자 금액이 2009년 64억달러에서 2018년 668억달러까지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업계에선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벤처 시장에 뛰어들길 바라지만 금산분리 규제 등에 막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산업과 재벌그룹 규제의 뼈대인 금산분리와 지주회사 규제를 완화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시브이시가 대기업 총수나 모회사의 사금고로 전락하거나 혁신 산업마저도 재벌그룹의 주머니에 들어가면서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이 더 심화할 수 있다. 이에 정부도 해당 규제 완화 대신 자회사의 지분 요건을 40%에서 20%로 낮출 수 있는 벤처지주회사 기준을 완화(자산총액 5천억원→300억원)하는 선에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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