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중국 공장이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로 부품사의 납품이 차질을 빚으면서 지난주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사진은 지난 2013년 11월 현대자동차 중국 베이징 3공장 생산라인에서 중국 근로자들이 줄지어 서서 일하는 모습이다. 베이징/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라 중국 정부가 오는 9일까지 공장 재가동 시기를 늦추면서 그 여파가 국내 기업에도 미치고 있다. 중국이 한국 반도체·스마트폰·전기차 배터리 생산지인데다 기초화학재료 공급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이에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한 수출과 생산 부문의 회복 속도도 더뎌지거나 줄어들 우려도 커지고 있다.
4일 <한겨레>가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를 통해 한국의 중국 수입 현황을 살펴본 결과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입금액 1위 품목(MTI코드 6단위 기준)은 디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였다. 지난해 누적 수입금액은 142억8천만달러(약 17조원)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돼 다시 국내로 들어오는 물량이다. 두 기업은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반도체 물량 상당수를 전공정(웨이퍼 가공) 단계까지 생산한 뒤 한국으로 들여와 후공정(웨이퍼 절단·포장)해서 글로벌 고객들에게 되판다. 감염증 사태가 확산되어 두 회사의 중국 거점 공장 재가동 시기가 늦춰질수록 국내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2위 역시 국내 주요 수출 품목을 생산할 때 들어가는 ‘기타정밀화학원료’(54억4천만달러·약 6조4600억원)다. 화학제품에 들어가는 이산화질소·수소·염소와 이차전지 재료인 니켈, 망간, 리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물질이 없으면 전기차 배터리 수출을 이끌고 있는 엘지화학과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삼성에스디아이(SDI)가 생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대중국 수입 4위와 5위 품목은 각각 화웨이, 레노버 등이 만드는 휴대용 컴퓨터(노트북)와 비오이(BOE), 차이나스타(CSOT) 등 중국 디스플레이패널 업체가 만드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로 나타났다.
6위는 현대·기아자동차와 쌍용차 일부 생산 라인을 멈추게 한 ‘와이어링 하네스’(17억1천만달러·2조300억원)였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국내보다 상대적으로 싼 범용 자동차 부품을 중국에서 가져왔다.
개별 상품(HS코드·6단위 기준)별로도 수입액을 집계해 보니 반도체와 스마트폰, 통신장비, 자동차부품이 상위권을 차지한 가운데 리튬이온축전지가 8위를 차지했다. 삼성에스디아이와 엘지화학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소형 이차전지가 가전제품 및 소형 전자제품 배터리 용도로 한국에 들어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발자전거·인형·완구류 등 생활소비재도 20위였다.
이처럼 대중국 수입금액 기준 상위 품목은 대체로 국내 대표 수출 품목의 원재료이거나 부품이다. 국내 기업들은 품목에 따라 일정한 재고를 갖고 있으나, ‘와이어링 하네스’와 같이 재고를 적게 가져가는 품목에선 곧바로 생산 차질로 나타나는 흐름이다. 중국 현지 공장 재가동 시점이 지연될수록 그 파장이 국내 주요 수출 기업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의 한 간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개별 기업들이 얼마만큼의 재고를 확보하고 있는지는 영업 기밀인 터라 정부로서도 정확히 그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9일까지는 남은 재고로 버틸 수 있지만 장기화되면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비상계획을 짜고 있다”고 했다.
글로벌 생산기지인 중국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 글로벌 기업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 해 한국의 대중국 수입금액(MTI코드 6단위 기준)이 세 번째로 많았던 ‘코드분할 전화기’(스마트폰)는 애플이 중국 공장에 위탁생산한 뒤 한국에 파는 스마트폰 물량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장이 가동을 중단하면 아이폰 출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미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는 최근 컨퍼런스콜을 통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이폰 생산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인건비와 광물자원을 토대로 2000년부터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생산 거점이 됐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원부자재 수입 의존도나 중간재 수출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 생산 차질을 겪을 수 있고 심하면 공정이 멈출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