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이 저마다 극심한 경영난에 빠지면서 업계의 ‘구조요청’ 목소리도 높다. 지난달 산업은행이 엘시시에 최대 3천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했으나, 여객 수가 90% 넘게 줄어든 터라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 저비용항공사들의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배경엔 코로나19로 인한 충격 이전에 공급과잉에 따른 과잉 경쟁이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이스타항공은 누리집에 국내선 운항 중단을 한달 더 연장해 5월28일까지 노선을 운항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이스타항공은 국제선 여객 운항도 6월 말까지 중단한 바 있다. 이스타항공은 이달 들어 전체 직원 1600여명 중 300여 명을 감축하기로 하는 등 코로나19 사태 이후 항공업계 처음으로 구조조정에 나섰다. 회사 쪽은 오는 21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구조조정 대상 명단을 확정지을 방침이다.
현재 국내 저비용항공사의 체력은 사실상 바닥난 상태다. 에어서울의 경우 코로나 사태가 불거지기 이전인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미 완전자본잠식에 빠졌고, 신생 항공사인 플라이강원도 자본잠식 상태다. 사정이 이런데는 공급과잉이 주된 요인이 됐다. 국내 엘시시는 지난해 인가받은 3곳을 포함해 모두 9곳. 2005년 티웨이항공(옛 한성항공)이 처음 취항한 뒤, 2006년 제주항공 등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운 업체들이 잇달아 뛰어들며 시장 규모를 키웠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공항을 이용한 국제선 여객 10명 중 7명(66.9%)은 국내 항공사를 이용했는데, 3명(29.5%)은 엘시시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7년 한 해 동안 한국인 일본 방문자는 714만 명으로, 1년 만에 40.3%나 증가하면서 엘시시 업계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렸다.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의 명분을 내건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의 행보도 한몫 했다. “양양공항을 기지로 한 항공사 취항이 이뤄지지 않으면 운항보조금 등 모든 지원을 끊겠다.”(강원도청), “엘시시 면허 신청 반려 이유가 과당경쟁 우려 조항 때문인데 시대에 맞지 않는다. 위헌 여부를 검토해 헌법소원을 내서라도 관철시켜야 한다”(이시종 충북지사) 등 지자체들은 저마다 ‘실력 행사’에 나서며 엘시시 시장에 뛰어들었다. 결국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신규 항공면허 인가 명단에는 플라이강원(양양)·에어로케이(청주)·에어프레미아(인천) 등 3곳이 올랐다. 더군다나 국회는 지난해 항공운송사업면허 기준 중 ‘과당경쟁 우려’ 조항을 삭제한 항공사업법 개정안을 가결시켜 추가 진입 문턱까지 낮춰놨다.
하지만 인구에 견줘봐서도 우리나라 엘시시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 할 만하다. 실제로 국내 인구는 미국의 15% 수준인데도, 엘시시 수(9곳)는 미국과 같다. 한국보다 인구가 2.4배 많고 국토가 더 넓은 일본도 8곳뿐이다.
정연승 엔에이치(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공급과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 이후 펀더멘털(기초체력) 개선을 위해서 공급 구조조정 선행이 필요하다”며 “위기에서 살아남는 항공사도 부채 증가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가 불가피하고, 공급 구조조정 없이 단순 정부 지원이 이어질 경우엔 위기에 취약한 구조가 유지될 전망”이라고 짚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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