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 주도로 출범한 대기업 사무직 노동조합이 시작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공정한 성과 보상제 도입 등을 위해선 회사와의 교섭 창구부터 만들어야 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첫 사례가 나왔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사쪽과 개별 교섭 창구를 마련하겠다는 ‘엘지(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의 신청을 기각했다. 엘지전자 내 생산직 위주로 구성된 기존 노조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청년 사무직들의 요구가 시작 단계부터 발목을 잡힌 것이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한 사업장에 노조가 2개 이상인 복수 노조 설립을 허용하면서도 노조와 회사 간 각종 노동조건을 정하는 단체 교섭 창구는 하나만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섭 과정의 혼란과 노-노 갈등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같은 사업장 내에서도 노동조건이 크게 차이 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는 노조별로 별도 교섭 창구를 갖게 허용한다.
엘지전자 사무직 노조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지방노동위가 교섭 단위 분리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처럼 노조가 사쪽과의 개별 교섭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향후 동력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 다수로 이뤄진 교섭 대표 노조를 향한 시정 요구 외에 가진 권한이 없어서다.
엘지전자 사무직 노조를 대리하는 김경락 노무사(대상 노무법인 대표)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고 다시 기각되면 행정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엘지전자의 동향이 주목받는 것은 최근 엠제트(MZ·1980~2000년대 출생) 세대 중심의 대기업 사무·연구직 노조 설립 움직임에 선례가 될 수 있어서다. 올해 3월 엘지전자에 사무직 노조가 출범한 이후 지난달에는 현대자동차그룹과 금호타이어에도 사무직 노조가 닻을 올렸다. 엘지전자 사무직 노조의 유준환(30) 위원장은 1991년생,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의 이건우(27) 위원장은 1994년생이다.
이들은 생산·기능직 중심의 대형 노조와 회사 간 단체협약에 의한 기존 성과 평가 체계와 보상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별도 노조 설립에 나섰다. 하지만 조합원 확보와 함께 별도 교섭권을 인정받지 못하면 앞으로 추진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그룹과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는 아직 교섭 단위 분리를 신청하지 않은 상태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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