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값이 3300만원인 현대자동차 그랜저에 붙는 연간 자동차세는 약 65만원(지방교육세 포함)이다. 반면 6430만원짜리 BMW 5시리즈(6430만원)의 자동차세는 52만원에 불과하다. 1억원을 넘는 테슬라 전기차 모델 S의 경우 자동차세가 13만원에 불과하다.
30일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실 자료를 보면, 국산 차와 수입차 사이 이 같은 ‘자동차세 역전 현상’이 뚜렷하다. 이는 현재 자동차세가 차량의 엔진 배기량을 기준으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자동차세는 배기량 1천cc 이하 차량의 경우 cc당 80원, 1600cc 이하는 cc당 140원, 1600cc 초과는 cc당 200원을 각각 부과한다. 엔진 배기량이 클수록 많은 세금을 물리는 단순 누진세율 구조다.
국산 차가 수입차보다 배기량 큰 엔진을 탑재하다 보니 세금도 더 내는 것이다. 실제로 그랜저와 카니발의 배기량은 각각 2497cc, 3470cc로 BMW 5시리즈(1998CC), 벤츠 더 뉴 E-클래스(1991cc), 아우디 A6(1984cc)보다 높다. 수입차 제조사들 사이에서 낮은 배기량으로도 큰 힘을 내는 ‘엔진 다운사이징’이 유행하며 소배기량 차량이 부쩍 많아졌다.
테슬라 모델 S처럼 전기 모터를 이용하는 전기차는 아예 배기량 자체가 없다. 현행 지방세법은 이런 전기 승용차에는 자동차세 10만원을 단일 부과하고 있다.
이런 세금 역전 현상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 등에선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 중 하나가 자동차 가격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하자는 방안이다.
구자근 의원도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배기량에서 찻값으로 변경하고 과도한 자동차세를 감면하는 ‘지방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지난 3월 발간한 ‘시장 변화에 따른 합리적인 자동차세 가격 요소 도입 방안’ 보고서에서 “친환경차 자동차세를 경차와 같은 연 10만원(지방교육세 포함시 13만원)으로 부과하면 장기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자동차세 세입 감소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중량 및 최고 출력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배기량에 따라 5개 구간으로 구분했던 지방세법의 비영업용 승용차 자동차세율이 지금과 같은 3개 구간으로 개편된 것은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따른 것이다. 당시 한-미 FTA 합의문(제2.12조 제3항)에는 “배기량에 기초한 새로운 조세의 도입 또는 기존 조세의 수정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과의 재협상 없이 한국 정부 스스로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바꿀 수 없다는 얘기다. 자동차세가 환경 오염에 따른 부담금의 성격을 갖는 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대배기량 차량에 높은 자동차세를 물리는 것이 타당하다는 지적도 여전히 적지 않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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