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낸 직원은 스카우트도 포기…`노예문서'
증권사 직원들의 한숨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수당 감소로 지갑이 얇아지고 빗발치는 투자자들 항의에 시달리는 가운데 1~2년 전에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가격마저 뚝뚝 떨어져 설상가상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12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2006년 이후 현대, 한화, NH투자, 동부, 키움, 메리츠, 유진투자(옛 서울증권), 미래에셋증권이 자기자본투자(PI) 등을 늘리기 위해 앞다퉈 주주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하면서 우리사주조합에도 주식을 배정했다.
유상증자를 실시할 때만 해도 증시 상황이 나쁘지 않았고 전망도 좋아 당시 주가보다 싸게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직원들 대부분이 놓치지 않았다. 실제 현대, 키움증권만 우리사주에 배정된 물량이 소폭 미달됐을 뿐 다른 증권사는 전량이 청약됐을 정도로 우리사주의 인기는 높았다.
회사는 직원들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저금리로 대출 받을 수 있는 금융기관을 주선,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 여원을 빌려줬다.
그러나 최근 증시 침체로 증권주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우리사주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7년 7월 키움증권 직원들은 주당 5만7천300원에 우리사주 청약에 참여했지만 12일 3만7천원으로 마감돼 1년4개월 만에 35% 가량 손실이 났다.
같은 해 11월에 우리사주 배정에 참여한 현대증권과 메리츠증권 직원들도 우리사주의 가격이 반토막으로 쪼그라들었다.
현대증권은 주당 1만6천400원, 메리츠증권은 1천638원(5대 1 액면분할 감안한 수정 주가)에 우리사주를 배정했지만 이날 종가는 각각 7천850원, 895원에 불과하다.
2007년 12월에 우리사주를 8천190원에 받은 동부증권 직원이나 2006년 6월에 7천600원에 우리사주를 산 NH투자증권, 올해 2월에 7천280원에 청약한 한화증권 직원들에게도 우리사주는 애물단지가 됐다.
손실을 면한 곳은 상장 후 1년 만에 유상증자를 실시한 미래에셋증권(주당 5만원)과 유진투자증권에 인수된 뒤 다시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인 옛 서울증권(주당 855원) 정도다.
한화증권을 제외한 타 증권사 직원의 경우 보호예수기간 1년이 지나 우리사주를 마음대로 팔 수 있지만 상황이 이러다 보니 우리사주가 일부 직원들에게는 아예 노예문서가 되고 있다.
이직이나 전직을 하려 해도 주가가 너무 헐값이어서 우리사주 매입용으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른 증권사 등으로부터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놓고도 반 토막 난 우리사주 때문에 포기하는 사례마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증시가 활황일 때만 해도 모 증권사 강남지역 영업직원이 무려 20억 원의 성과급을 받아 가고, 미래에셋증권은 상장 성공으로 우리사주도 대박이 나 부러움을 샀다.
증권사 직원 배우자들은 통장에 `0'자가 하나 더 찍혔다며 회사에 확인하는 일까지 있다는 소문도 유행했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정반대다.
우리사주를 사지 못했다는 한 증권사 영업직원은 "우리사주 못 받을 때는 나만 소외되는 것 같더니 오히려 잘한 셈이 됐다"며 "그런데 왠지 씁쓸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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