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1일 싱가포르 거래소서 매매정지
한국에선 다음날 오전 10시에야 조처 내려
개미들만 피해…허술한 공시체계 비판 일어
한국에선 다음날 오전 10시에야 조처 내려
개미들만 피해…허술한 공시체계 비판 일어
국내 상장된 중국기업의 부실 징후를 현지에서 먼저 파악한 기관투자가들이 거래정지 전날 이 주식을 대량 투매한 것으로 드러나 증권거래소의 허술한 공시체계가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3월2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고섬의 기업설명회에 참석했던 기관투자자들은 원주가 상장된 싱가포르 증시에서 이 회사의 주가가 급락하자 국내 본사와 정보교환을 통해 다음날인 22일 한국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이 회사 주식 175만주를 내던졌다. 영문을 모르는 개인들은 되레 177만주를 주워담았으나, 중국고섬은 이날 오전 9시40분께 하한가로 떨어졌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오전 10시에야 뒤늦게 매매정지 조처를 취해, 브이아이피(VIP)들의 예금 사전인출과 금융당국의 허술한 대응으로 일반 예금자들이 피해를 본 저축은행 사태를 연상시킨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중국고섬 기업설명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 행사에는 국내 증권사 4곳의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문사 3곳의 펀드매니저, 언론사 기자 1명이 참석했다. 설명회가 열린 21일 오후 싱가포르 증시에서 중국고섬 주가가 24%나 폭락하자 이들이 소속된 국내 기관의 리서치팀이 상황 파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저녁 주가 이상급락에 대한 조회공시를 받은 중국고섬은 곧바로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매매정지를 요청했다.
싱가포르 증권거래소가 중국고섬의 거래정지 요청을 받아들인 사실을 한국거래소가 다음날 증시 개장 전에만 알렸더라도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한국거래소 공시팀 관계자는 “매매정지 조처는 상장기업이 먼저 사유를 공시해야 그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고섬의 상하이 기업설명회는 이보다 앞선 3월19일에도 투자자문사 등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을 전후해 기관들이 순매도로 전환하는 등 매도 강도가 거세졌다.
섬유업체들의 지주회사인 중국고섬은 현재 재무적 문제로 싱가포르 현지에서 특별감사를 받고 있다. 2007년 8월 3노드디지탈을 시작으로 국내 증시에는 현재 15개의 중국 기업이 상장돼 있다. 또 미국 기업인 뉴프라이드 등을 포함해 국내에 상장된 외국기업은 모두 18개다. 하지만 중국 기업 연합과기가 상장된 지 5개월 만인 2009년 4월 두차례 ‘감사의견 거절’을 받아 말썽을 일으켰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원양자원이 대주주의 보유 주식 편법 증여에다, 갑작스러운 유상증자 공시와 철회로 투자자들의 불신을 자초했다. 이런 와중에 중국 타일 제조사인 완리인터내셔널홀딩스가 다음달 국내 증시에 상장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중국 등 외국 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제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외국 기업에 대한 과도한 특례와 거래소의 ‘실적주의’가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외국 기업 유치에 치중한 나머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대책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중국고섬처럼 원주가 국외 증시에 상장돼 있으면서 예탁증서 형태로 국내에 2차 상장된 경우에는 시차를 고려한 시장 감시와 공시체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상장된 중국기업 화풍방직도 원주가 홍콩에서 거래되고 있다.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 관계자는 “외국거래소의 움직임까지는 점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증권거래소는 회계부정 의혹이 제기되는 중국 회사들의 주식 거래를 사전에 정지시킨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외국 기업에 대한 투자자 보호 규정을 두고 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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