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흐름읽기
그리스 사태가 수습되고 있다. 신용등급이 더 떨어졌고 아직 해결 방법이 만들어지거나 합의가 도출된 부분은 없지만, 주식시장이 큰물이 지나고 나면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제 시장의 핵심은 경기와 유동성이 됐다.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 국내 4월 산업생산 지표가 일제히 하락했다. 설비 보수 등 일회성 요인 때문이라고 하지만 지표가 떨어진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미국은 더하다. 기존에는 경기가 높은 수준에서 숨 고르기를 하는 ‘소프트 패치’(Soft patch)를 기대했지만 상황이 여기에서 더 나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해 악화가 분명해졌고 소비와 생산 등도 약해지고 있다.
반면 유동성은 좋다. 월말에 미국이 2차 양적 완화를 끝내더라도 유동성을 빠르게 회수할 수 없다. 우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과격한 정책을 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이 연속적으로 금리를 올리기는 더욱 어렵다. 비록 양적 완화가 끝난다 해도 주식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돈은 계속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는 유동성이 경기를 압도했다. 경제 지표가 둔화되는 속에서 주가가 오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데 당분간 현 상황이 유지될 전망이다. 문제는 경기 둔화가 빠르게 계속될 경우인데 유동성만으로 주가를 유지하는 데 한계에 부닥치고 주가가 급변할 수 있다. 이 경우 주가가 경기에 후행하는 형태가 되는데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종종 있었다. 1989년이 대표적인데 경기가 1988년 중반에 꺾였지만, 이즈음 시작된 금리 자유화에 따른 돈의 힘으로 주가 상승이 6개월 이상 계속된 뒤 1989년 4월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경기 둔화가 유동성을 압도할 때가 되면 돈의 역할이 바뀐다. 이전에는 유동성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원동력이지만 이때부터는 하락을 방지하는 수동적인 형태에 머물게 된다.
올해 4월 이전까지는 유동성과 경기 모두가 좋았다. 그 덕분에 주가가 꾸준히 오를 수 있었고 악재가 나와도 쉽게 극복이 가능했다. 이제 두 축 중 하나가 약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경기 동향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주가를 만드는 기본이 경기인데,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경기가 약해지는 속에서 주가가 계속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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