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W 수수료 수입 노리고
전용서버·사무실 제공 등
거래속도 높이는 특혜 줘
검찰, 12개 증권사 전현직 대표 무더기 기소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의 큰손인 스캘퍼(초단타 주식매매자)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한 혐의로 국내 주요 증권사 12곳의 대표가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이성윤)는 23일 삼성·우리투자·케이티비(KTB)투자·이트레이드·에이치엠시(HMC)·대신·신한금융투자·엘아이지(LIG)·현대·한맥투자·대우증권의 대표이사를 자본시장통합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유진투자증권은 전직 대표가 기소됐으며 12곳 증권사의 관련 임원 13명도 함께 기소됐다. 검찰 관계자는 “스캘퍼에 대한 증권사의 특혜는 대표이사들의 결재를 받아 시행됐다”며 “지위에 맞는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해 이를 지시하고 감독하는 증권사의 대표이사를 기소했다”고 말했다.
주식워런트증권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개별 주식·지수의 등락에 내기를 걸고 그 권리를 증서로 사고파는 것이다. 증권사가 유동성공급자(LP) 구실을 독점하고 다수의 투자자들이 이를 사는 방식이기 때문에 거래 속도가 투자의 성패를 좌우한다. 증권사는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노리고 거래 속도를 높이는 다양한 편의를 스캘퍼들에게 제공했다. 스캘퍼들에게 외부 사무실(속칭 부티크)을 무상으로 임대해주거나, 증권사 서버와 바로 연결되도록 내부 트레이딩룸에 스캘퍼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또 방화벽을 거치지 않고 주문 시점에 필수적인 ‘원장체크절차’를 생략시켰다. 이런 각종 특혜를 제공받은 스캘퍼는 일반 투자자들에 비해 3~8배 빠르게 초단타 매매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주식워런트증권 시장을 키운 증권사는 지난해 711억원의 수수료 수입을 벌어들였다. 지난해 개인은 3400억원가량의 손실을 낸 반면 스캘퍼는 1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본 것으로 금융감독원은 추정했다. 검찰은 이 밖에 편의 제공 대가로 스캘퍼들에게 수억원의 금품을 받거나, 호가를 사전에 스캘퍼에게 알려주고, 스캘퍼가 지급한 수수료를 차명계좌를 통해 되돌려준 추가적인 불법행위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5개 스캘퍼 조직원 18명(2명은 구속)과 증권사 직원 5명(2명은 구속)도 기소했다.
증권업계는 스캘퍼와 증권사 유착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스캘퍼를 얼마나 유치하느냐가 매매 점유율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전용회선을 제공하고 수수료도 깎아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증권사는 “회사별 사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법으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며 법적 대응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기본예탁금 1500만원 부과 등 주식워런트 시장 제도 개선 방안을 다음달부터 점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용선 배정은 유지하기로 해 불씨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소수 투자자에게 제공하던 전용선을 비용만 지불하면 일반 투자자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양성화했다.
검찰 수사 이후 대거 이탈했던 스캘퍼들은 최근 주가 변동성이 커지자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식워런트 거래량이 회복되고 개인 투자비중은 여전히 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스캘퍼의 불공정 매매 방지 대책은 여전히 취약하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한광덕 선임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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