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21 15:54
수정 : 2012.02.21 22:08
룸살롱서 주가조작 시나리오 설계·실행
고등학생때도 작전 시행 기소유예 처벌
전주: 송아무개(35·대기업 재무팀장)/횡령한 회사자금 중 일부를 작전 자금으로 투자
작전설계자: 김아무개(19·지방대 경제학과 학생)/북 경수로 폭발 유언비어 작전을 전체적으로 구상·실행
작전 실행 선수: 우아무개(27·무직), 김아무개(24·무직)/유언비어 제작·유포.
캐스팅 담당: 이아무개(29·회사원/전주 및 작전설계자 등을 서로 소개
‘북한 경수로가 폭발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주가를 조작하고 시세차익을 올린 일당의 작전은 영화 ‘범죄의 재구성’ 을 떠올리게 만들 만큼 신속하고 정확했다.
이 작전에 참여한 송씨 등 5명은 지난 12월20일 밤, 강남 ㅂ룸살롱에 모여 앉았다. 이씨는 11월부터 메신저로 알고 지내던 송씨를 ‘전주’로, 주가조작 전과가 있는 대학생 김씨를 ‘작전 설계자’로, 회사원 우씨 등 2명을 ‘선수’로 캐스팅(섭외)했다. 이 자리에서 설계자인 대학생 김씨는 루머를 유포해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을 사고, 루머가 허위로 판명돼 주가가 오르면 이를 다시 되파는 방법으로 단기 시세차익을 올리자는 작전을 짰다. 김씨는 이미 지난 2010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주가조작에 나섰다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경력’이 있어 작전을 설계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작전에 필요한 자금은 송씨가 조달했다. 삼성에스디에스 직원으로 자회사인 ㅇ사 재무담당자로 파견돼 일하던 송씨는 이미 20억의 회사자금을 빼돌려 주머니가 든든한 상황이었다. 송씨는 20억 가운데 1억3천만원을 작전자금으로 내놨다. 루머를 퍼트리는 것은 우씨와 무직인 또다른 김씨가 맡기로 했다. 수익은 전주인 송씨와 나머지 작전세력들이 반반씩 나누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작전당일’인 1월16일. 대학생 김씨 등 4명은 부산의 한 피시방으로 집결했다. 김씨는 우씨 등 선수 2명과 함께 증권가에서 주로 사용하는 메신저인 ‘미쓰리’를 이용해 증권사 관계자와 애널리스트 등 203명을 검색해 이들에게 ‘북한 경수로 폭발. 방사능 유출. 북서풍 타고 서울로 유입 중’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일괄 전송했다. 김씨는 루머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구글 번역기’를 이용, 일본어 문장을 만들어 함께 넣었으며 폭발 사진까지 첨부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주가는 예상대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범행 당일 종합주가지수는 장중 한때 1,824.29를 기록, 전일 종가인 1,863.74 대비 4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코스닥 또한 전일 521.96에서 515.09로 8포인트 가 떨어졌다. 같은 시각, 회사에 앉아 컴퓨터를 보며 작전을 주고받던 송씨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사전에 사들였던 ‘이엘더블유(ELW·주식워런트증권) 풋’(사전에 정한 시기에 특정 가격으로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갖는 유가증권. 풋은 팔 수 있는, 콜은 살 수 있는 권리)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작업에 걸린 총 시간은 단 47분이었다.
이후 이들 일당은 또 금융당국과 경찰이 이러한 루머가 허위임을 공표하며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주식시장이 다시 안정을 찾자 ‘이엘더블유(ELW) 콜’ 상품을 팔아치웠다. 이렇게 단 몇 시간만에 송씨 일당이 얻은 시세차익은 2900만원에 달했다.
범행이 성공하자 대학생 김씨와 우씨 등은 지난 2월 초, 또다른 ‘작전’을 구상했다. 경찰의 ‘수사방침’에 겁을 먹은 송씨가 참여를 망설이자, 캐스팅을 맡은 이씨는 이번엔 표아무개(48)씨를 ‘전주’로 영입했다. 대학생 김씨 등 선수 2명은 제약사 홍보직원을 사칭하며, 홍보대행사를 통해 특정 제약사가 백신을 개발했다는 내용의 허위 호재성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홍보대행사가 증거자료를 요구하자, 회의록과 임상결과보고서까지 작성해 보냈고, 실제로 보도자료를 믿은 일부 언론은 이를 보도했다. 이들은 해당 제약사에 7억4500만원을 투자해 4일 만에 3200만원을 벌어들였다.
경찰은 이렇게 허위사실을 증권시장에 퍼트려 시세 차익을 거둔 혐의(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위반)로 대학생 김씨와 송씨,우씨 등 3명을 구속하고, 이씨 등 3명은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관계자는 “증권가 메신저를 통해 유언비어가 범람하고 언론보도 대행사의 기업 홍보성 자료가 아무런 검증없이 기사화되는 등 문제가 노출됐다”며 “금융감독원과 공조해 추가 수사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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