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30 19:50
수정 : 2013.05.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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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에 희생된 엘앤피아너스
LCD 디스플레이로 미국 뚫으며
매출600억 창업 10년간 승승장구
금융출신가, 최대주주된 뒤
3년간 2만회 시세조정 95억 챙겨
회사는 3년연속 당기순손실 기록
결국 2011년말 코스닥 상장 폐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전 코스닥 상장사 최대주주를 주가조작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은 지난 25일이었다. <한겨레> 취재 결과, 당시 고발된 최대주주의 회사는 2011년 말 상장폐지된 엘앤피아너스로 나타났다. ‘엘앤피아너스 사건’은 유망한 중소 기술 기업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주가조작 세력이 어떻게 이익을 빼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디와이코퍼레이션이란 상호로 1996년 설립된 엘앤피아너스는 창업 뒤 10년간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창업 1년만에 100만달러 수출탑 수상 뒤 외환위기를 뚫고 불과 3년만에 수출액이 10배 이상 늘어났다. 2003년엔 2000만달러 수출탑을 받으며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04년에도 혁신기업으로 인정받아 대통령상과 산업자원부장관상을 받았다. 산업은행·기술보증기금 등 국책금융기관들도 앞다퉈 이 회사를 유망중소기업·혁신기업으로 선정했다. 매출액도 2002년 144억원을 기록한 이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늘어나 2005년엔 600억원을 돌파했다.
이 회사의 설립자는 대우전자 출신 이상훈씨다. 재벌 대기업에서 배운 기술과 노하우가 창업의 자양분이 됐다. 생산품목은 저가 피디피(PDP)·엘시디(LCD) 티브이(TV)용 디스플레이였다. 매출 90% 이상이 수출에서 나온 수출 강소기업이었다. 핵심 수요처는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코스트코와 샘스클럽이었다. 삼성·엘지전자 등 공룡기업이 장악한 티브이 시장의 틈새를 파고든 셈이다.
먹구름은 2006년부터 몰려왔다. 주력 품목의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당기순손실을 기록한다. 자원개발·낙뢰사업에 뛰어드는 등 활로를 모색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영진 손바뀜이 두차례나 일어났다.
금융감독원에 적발된 범죄행위는 이아무개씨가 최대주주에 오른 직후인 2008년부터 시작된다. 이씨는 한 캐피탈사의 대표이사를 지내는 등 금융업에 종사하던 인물이다. 창업자와는 출신 배경부터 다르다. 2008년 5월말 최대주주가 된 직후 그는 15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다. 대출금 상환 등이 증자 목적이었지만 주식을 받기로 한 이들이 대거 주식인수를 포기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이씨는 유상증자 성사를 위해 회사 직원과 함께 불과 두달 동안 6000회가 넘는 허수·고가 주문을 넣으며 시세조종에 나선다. 주가를 부양해 유상증자 참여자들의 이익을 보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유상증자 참여자에게 원금보장 이면계약까지 맺었다.
2009년 1월에도 이씨는 당시 대표이사 신아무개씨와 함께 400회에 가까운 허수·고가 주문을 넣는 등 시세조종에 나선다. 이번에는 1월말 감자 전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목적이었다. 2월 말 감자 완료 뒤 재상장될 주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감자전 주가 관리가 중요했다. 범죄 행각은 더 대담해졌다. 그는 두 달 뒤인 2009년 3월부터 9월까지 7개월간 무려 9700여건의 허위·고가 주문을 넣는 수법으로 주가를 부양시켰다. 사채업자와 금융브로커와 함께 자신의 차명주식을 고가에 매도한 후 수익을 배분하기로 약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씨가 주가조작으로 수십억원의 부당이익을 취하는 동안 회사는 갈수록 무너져가고 있었다. 주력 품목을 바꿔 디스플레이 도광판을 삼성전자와 엘지디스플레이에 납품하는 등 잠시 매출이 늘어나는 듯 했지만 2008년 이후 3년 연속 당기순손실 늪에 허우적거렸다. 결국 2011년 12월 상장폐지된다.
이씨가 세차례에 걸쳐 시세조종에 사용한 계좌는 모두 114개에 이르고, 주문횟수는 2만여회가 넘는다. 전문 작전세력도 힘을 보탰다. 이를 통해 그가 챙긴 부당이익은 95억1000만원이다. 그의 이같은 범죄행각은 수년간 드러나지 않다가 2011년 초 경찰청에 제보가 들어오면서 점차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경찰청은 서울중앙지검에 해당 사건을 이첩했고, 검찰은 금감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방대한 계좌를 동원한 시세조종 행위임에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은 주가조작 적발 체계에 구멍이 크게 뚫려 있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관계자는 “모든 주가조작 행위가 거래소에서 적발되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의 분석 의뢰로 2011년 8월에 혐의 계좌 분석을 해 그 결과를 넘겼다”라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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