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29 19:18
수정 : 2014.05.29 19:18
이종우의 흐름읽기
1992년 12월 17일. 대선 하루 전날, 마감 5분 전까지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전산 장애가 발생했는데 복구 후 거래가 재개되자 상승으로 바뀌었다. 다음날 선거 때문에 기관투자자를 동원해 종가를 관리했다는 루머가 퍼졌다. 사실이라면 유치하기 이를 때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주가가 ‘정권지수’라 얘기될 정도여서 정부가 여간 신경을 쓰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거는 최고의 정치 행위다. 파급력이 커 주식시장에 다양한 영향을 끼친다. 오죽하면 월가조차도 ‘선거 전에 악재 없다’는 얘기를 할 정도다.
과거 우리도 선거가 주가를 좌지우지한 적이 있다. 1987년 대선과 1988년 총선이 대표적인데 1987년은 16년 만에 처음 직접 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뽑는 생소함 때문에, 1988년은 최초로 여소야대가 형성된 정치 환경 변화 때문이었다.
선거에 따른 영향은 1988년을 정점으로 약해져 지금은 눈에 띄는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투자자들이 선거를 포함한 정치적 사건에 익숙해진데다, 눈에 띄는 공약이 없어져서다. 과거에는 선거 때가 되면 많은 개발 공약이 나왔다. 당장 ‘삽질’이 가능하므로 주식시장이 반응하기 좋은 재료들이었다. 지금은 ‘경제민주화’처럼 개념적인 부분을 놓고 맞붙기 때문에 투자 대상을 선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투자자들이 생각해 낸 게 후보와 관계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거다. 대통령선거 때 특히 심한데 2007년에는 선거 6개월 전에 시작하더니, 재작년에는 아예 1년 전부터 기승을 부렸다. 이런 투기적 흐름을 고려할 때 선거로 인한 영향이 질적으로 퇴보했다고 생각된다. 선진국은 선거 결과가 업종간 부침의 형태로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이 승리하면 정보통신(IT)과 금융이, 공화당이 승리하면 정유, 국방 관련주가 강세를 보인다. 두 당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산업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음주 지방 선거도 주식시장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고 마무리될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뚜렷이 부각된 경제 쟁점이 없어서다.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정책적 변화가 있었다면 후유증을 걱정해야겠지만 그런 증거도 없다. 1990년 이후 16번의 전국 단위 선거 전후에 나타났던 선거일전까지 주가가 오르다 선거가 끝나면 하락하는 정도의 변화에 그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주식시장과 별개로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했으면 좋겠다. 300년 전부터 인류는 지금의 투표제도를 얻기 위해 투쟁해왔다. 한 표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이종우 에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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