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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9 20:03 수정 : 2014.09.10 10:39

김영훈 기자

잦은 매매 유도해 수수료 챙기기
회전율 높으면 수익률 오히려 저조

“중독성 고객 상대로 장사” 반성
한화증권 정액제 수수료 도입
직원 성과급 산정 기준도 바꿔
‘투자자 중시’ 실험에 업계 촉각

“한국에서 주식 중개업은 거의 중독성 고객을 상대로 한 ‘스크린 경마’와 다를 바 없다.”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사장은 지난달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증권사 주식 중개업을 ‘사행성 산업’에 비유했다. 증권업이 합리적인 고객들의 신뢰를 잃고, 남아있는 중독성 고객을 상대로 매매 수수료 챙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런 낡은 관행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

‘경마장 같은 주식시장’을 만든 가장 큰 원인은 국내 증권사의 높은 위탁매매 영업 의존도다. 올 3월 말 기준 증권사 전체 수수료 수익 가운데 위탁매매수수료(수탁수수료) 수익은 58.1%에 이른다. 위탁매매 영업은 주로 직접투자를 하는 고객을 상대로, 매수·매도 주문을 받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식을 한번 사거나 팔 때 증권사는 영업점 주문의 경우 0.5%, 홈트레이딩 시스템 주문의 경우 0.1% 안팎의 수수료를 챙긴다.

그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의 수익은 뒷전으로 밀린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고객 수익과 무관하게 매매가 많아질수록 이익이 늘기 때문이다. 한화증권은 지난 8월 ‘주식매매 회전율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위탁매매 영업에 치중했던 과거를 반성하며, “2013년 한화증권을 이용했던 고객을 분석한 결과, 자산 회전율이 300%를 넘으면 -3%~-20%의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고, 손실 가운데 상당 부분은 수수료와 세금 등 매매비용 이었다”고 밝혔다.

올들어 바꾼 한화증권의 주식 매매 수수료, 직원의 성과급 체계에는 이런 고민이 담겼다. 한화증권은 업계 최초로 정액제 수수료 방식을 채택했다. 영업점을 통해 주문할 경우, 주문 금액에 상관없이 1만9500원을 정액으로 떼는 대신 수수료율을 절반 수준인 0.25%로 낮췄다. 투자자 입장에서 800만원 이하를 투자할 경우 수수료가 지금보다 늘지만 투자 금액이 그보다 클 때는 수수료가 낮아진다.

직원 성과급 체계도 바꿨다. 예를 들어 1000만원 자산을 가진 계좌에서 한 분기 동안 2000만원어치 매매(회전률 200%)가 이뤄졌다면, 그 이상 거래에서 발생한 수수료 수익은 담당 지점의 성과급 산정 기준에 포함하지 않는 식이다. 잦은 매매를 유도하는 관행을 깨기 위해서다. 한화증권 관계자는 “회사의 여러가지 실험들은 사실상 투자자(고객) 보호로 보면 된다. 업계에 잔뼈가 굵은 주 사장의 오랜 고민의 결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한화증권의 변화가 성공하려면 최소 2~3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2000년대 중반 우리투자증권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당시 위탁수수료 중심 영업 관행을 바꾸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고객과의 관계를 통해 장기적인 이익을 바라보고 가는 자산관리나, 기업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투자은행 업무로 체질변화를 꾀하자니 위탁매매에서 발생하는 단기적인 수익 감소를 견뎌야 했다”고 말했다.

다시 꿈틀대는 주식시장도 변수다. 코스피가 2000선에 안착하면서 대부분 개인 투자자의 위탁매매 계좌인 주식거래활동 계좌 수가 9일 기준 올들어 가장 많은 2000만개에 육박했다. 주식시장이 활황이면, 증권사가 매매를 자극하고 개인 투자자는 ‘묻지마 투자’를 하는 악순환이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한화투자증권 관계자는 “투자자를 위한다는 철학은 시장상황이 어떻든 변함없이 지켜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투자자 보호 관점의 접근에 금융당국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한화증권의 실험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증권업의 신뢰를 얻기 위한 업계의 자율적인 노력은 계속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잦은 매매 역시 투자의 한 방식으로 볼 수 있는만큼 정책적으로까지 과잉매매를 제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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