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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16 20:10 수정 : 2014.10.16 21:22

김영훈 기자 kimyh @h a ni.co. kr

장기불황 속 목표 달성 ‘고삐’
미달땐 임금 줄거나 한직 내몰려
빚 얻어 자기매매 ‘울며 겨자먹기’
“자기매매가 오히려 양심적”
불완전판매 유혹에 빠지기도

“주식시장에서 손실 본 것만 해도 5억원이다. 어쩔 수 없이 자기매매를 시작했고, 손실은 늘고 있다.”

한 증권사 수도권 지점에서 일하는 강현석(가명·44) 차장이 본격적으로 자기매매(증권사 임직원이 자기 명의의 계좌로 거래하는 것)를 시작한 건 다른 증권사에서 이직한 4년 전이다. 이직 뒤 그는 낯선 신생 영업지점으로 발령받았다. 고객기반이 전혀 없는데다 시장 상황마저 좋지 않아 영업은 험난했다. 회사는 월급의 120% 수익을 한 달이라도 내지 못할 경우 임금의 25%를 깎아버렸다. 월급이 500만원인 강 차장이 월급의 120%인 600만원을 벌려면, 본인이 관리하는 고객이나 본인 계좌를 통해 주식을 사고파는 금액이 한 달 12억원 정도는 돼야 한다.

목표를 못 채운 동료가 석 달 만에 회사를 나가는 모습을 본 뒤, 강 차장은 대출을 받아 자기매매를 시작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때 뛰어들어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이를 만회해보려고 위험한 걸 알면서도 선물옵션에 손을 댔다. 파생시장은 회전이 빠른 만큼 수수료 수익도 쉽게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얻은 빚이 현재 8000만원 정도다. 자기매매는 강 차장에게 ‘피할 수 없는 덫’이었다.

16일 김태환 새누리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국내 10대 증권사 임직원 가운데 올해 상반기 6개월 동안 자기매매 횟수가 1200회(하루 평균 10회 이상)를 넘는 임직원이 436명에 이르렀다. 자기매매는 원래 불법이었지만 2009년 자본시장통합법 이후 1인 1계좌에 한해 허용돼왔다. 개인적으로 투자수익을 얻기 위해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강 차장처럼 회사의 영업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자기매매에 내몰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각 증권사는 자체 규율 등을 통해 회전 횟수나 투자 가능 종목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히지만, 현실에서는 별다른 제재 없이 자기매매가 이뤄진다. 증권사 쪽에는 직원 돈이든, 고객 돈이든 수수료 수입으로 잡히기는 마찬가지다. 10대 증권사가 올해 상반기 임직원 자기매매로 벌어들인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은 215억원(1인당 159만원)에 이른다. 이는 일반 고객 계좌에서 번 수수료 수익(1인당 89만원)보다 더 많은 액수다.

증권사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수수료 수익과 판촉 캠페인 상품 판매를 영업직원에게 압박한다. 직원 한 명에게 들이는 돈을 손익분기점으로 계산해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임금을 삭감한 뒤 공개하거나, 제 발로 나가게끔 기반이 없는 낯선 환경으로 발령을 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외부 방문판매 조직, 성과 관리 프로그램 등이 직원을 몰아세우는 수단이다. 이들 조직과 프로그램에서 직원들은 ‘재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굴욕을 당한다. 강 차장 역시 이런 두려움 때문에 “손실이 날 것을 알면서도 자기매매를 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수료 실적과 판매 실적 압박은 때때로 불완전 판매에 대한 유혹으로 번진다. 한 증권사 지점에 지점장으로 있는 김민구(가명·52) 부장은 “자기매매를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양심적인 직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지난해 말 고객을 설득해 파생결합증권(DLS)을 사게 한 경험을 털어놨다. 김 부장은 “판매목표를 채워야 하는 캠페인 기간이라, 위험을 알면서도 고객에게 좋은 상품이라며 권했다. 결국 -60%가 넘는 손실이 났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내 돈으로 7000만원을 물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목표 달성이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의 압박이 있으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고객에게 불완전 판매에 가까운 거짓 판매를 하거나, 자기매매의 길로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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