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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증권

사장 말에 대꾸하자 ‘예의없다’…‘증권사 장그래’의 대기발령

등록 2014-12-24 20:02수정 2014-12-25 09:28

장그래 과장
장그래 과장
‘15년 증권맨’ HMC증권 박과장
올 증권사 ‘명퇴’ 칼바람에 퇴직
다시 계약직 과장으로 재입사

사장에 “굳이 지점 안줄였어도…”
다음날 대기발령뒤 3개월 정직
“계약직에겐 해고와 마찬가지”
‘박과장에 동조’ 다른직원은 감봉
“강남센터 직장예절 미준수 관련 감사팀의 감사 및 인사위원회 부의 요청에 따라 2014년 12월17일 개최된 인사위원회 심의 결과, 귀하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결정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22일 저녁 박아무개 에이치엠시(HMC)투자증권 전문직(계약직) 과장은 인사팀에서 정직 처분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에서 언급된 ‘강남센터 직장예절 미준수’는 지난 11월12일 강남센터 회의실에서 벌어진 일을 가리킨다.

이날 아침 7시 열린 월례회의에 김흥제 에이치엠시투자증권 사장이 갑작스럽게 방문했다. 당시 한 직원이 녹음한 파일 내용을 들어보면, 김 사장은 “직원을 줄이고 지점 수도 3분의 1로 줄여 (모기업인 현대차)그룹조차 수익 감소를 예상했지만, 지난 두달 120억원의 이익이 났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이에 대해 “굳이 지점을 줄이지 않았어도 감가상각 등을 고려하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였다. 우리 얘기 한번 들어본 적 있나”라고 항변한 뒤 회의실을 나갔다. 이후 김 사장은 격앙된 어조로 “어떻게 (일도) 못하는 사람이 감히 사장 앞에서 할 얘기가 뭐 있나. 실적이 좋은 사람이 그렇게 얘기하면 할 권리가 있다. 이 친구가 권리가 있나? 아까 그 친구 수익은 얼마 내요” 등 상당 시간 동안 박 과장을 비판했다. 박 과장의 동료는 “박 과장은 실적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전했다.

사장이 지점을 떠나고 불과 8시간 만에 박 과장은 ‘자택대기 대기발령’을 통보받았다. “어쨌든 살아남으려면 사장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동료의 말을 듣고 박 과장은 사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사장은 통화를 거부했다. 이후 지난 17일 인사위원회에 회부됐고, 22일 정직 처분을 받은 것이다. 이날 박 과장에게 동조해 “맞는 말이다”라고 단 한마디를 했던 다른 직원은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오른쪽)에게 연하장을 주는 오 차장. 두 사람의 관계는 유사 부자관계에 가깝다. 웹툰 갈무리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오른쪽)에게 연하장을 주는 오 차장. 두 사람의 관계는 유사 부자관계에 가깝다. 웹툰 갈무리
박 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장의 말을 되받은 이유에 대해 “열악해진 우리 환경을 보고도 사과 없이 실적만 강조하는 모습에 희망퇴직당한 당사자로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회사 쪽은 <한겨레>에 “회사의 대표인 시이오(CEO)의 지시에 불복함으로 임직원 상호간에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예의도 상실한 행동이다. 전대미문의 기본 직장예절 파괴행위가 발생한 것이다. 직원들을 치하하는 자리에서 이를 부정하는 주장은 전 직원에 대한 모독행위다”라고 징계 사유를 설명했다.

원래 정규직이었던 박 과장은 지난 7월 말 희망퇴직을 했고, 이후 계약직으로 다시 입사했다. 박 과장은 “회사를 나와도 생계수단이 마땅치 않아 먹고살기 위해 계약직 입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대대적인 희망퇴직과 지점 축소 뒤, 일터의 풍경부터 변했다. 그가 일하는 강남센터는 인근 다섯개 지점을 통폐합해 만들었다. 40여명 직원이 한 사람당 한 평도 안 되는 ‘닭장 같은 환경’ 속에서 일해야 했다. 실적 압박도 정규직 때와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다. 박 과장은 “정규직일 때는 실적 하락이 바로 퇴사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6개월 단위 계약직이 되고부터 한달에 1000만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바로 재계약이 어려워졌다.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아슬아슬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징계 역시 계약직이기에 더욱 타격이 크다. 박 과장은 “만일 내가 정규직이었다면 정직 징계를 받는다고 해도 회사로 다시 돌아오면 그뿐이다. 하지만 재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징계는 업계 퇴출과 마찬가지다. 이직을 하려고 해도 징계 기록을 달고 있는 계약직 직원이 다른 회사에 재입사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증권사 인력구성
증권사 인력구성
올 한해 증권가를 휩쓴 희망퇴직 이후 많은 증권맨들이 박 과장처럼 회사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신분은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바뀌었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증권사 정규직원 수가 지난해 12월 말 3만2262명에서 지난 9월 말 2만8392명으로 3870명 줄어드는 동안, 계약직원 수는 6697명에서 7393명으로 700명 정도 늘었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대외협력국장은 “한 증권사의 경우 250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내고 그 가운데 100명을 다시 계약직원으로 받기도 했다. 필요 이상 직원을 퇴직시켜놓고 해고하기 쉬운 형태로 고용형태만 바꾼 셈이다. 사장 말에 대꾸했다고 한나절 만에 대기발령을 내고, 해고와 마찬가지인 정직으로 몰고 간 상황 역시 계약직이기에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2000년 첫발을 디디고 15년 동안 몸담은 증권업계를 사실상 떠나야 할 처지다.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다시 업계 밖으로 계속해서 떠밀려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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