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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29 18:59 수정 : 2016.11.29 21:54

삼성물산 합병 찬성 논란
도마에 오를 때마다 ‘먹통’
“시장에 혼란 줄 수 있어” 라지만
시장은 “비공개가 더 혼란”

비공개 고수해도 불이익 없어 문제
이사 선임과정 불투명도 원인
공개의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필요

“우리가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설명은 기금운용 절차에 맞춰 전문가들이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했다는 것뿐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한 이유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지난해 7월 당시부터 최근까지도 이런 모호한 답변만 내놨다. 삼성물산의 단일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합병 비율이 물산에 불공정하다는 논란에도 합병 통과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국민연금은 투자 결정을 한 근거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적극적으로 소명하긴커녕 지난해 국정감사 때 관련 자료 제출에도 인색했다. 합병 찬성을 결정했던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 회의록조차도 지난해 국감 자료 요구 땐 열람만 허용했다가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최근 들어서야 국정조사 자료로 국회에 제출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 정보공개 요구 때마다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르다. 시장은 ‘비공개’, 즉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반대로 행동했다.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를 며칠 앞두고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 결정을 내렸고 이에 대한 언론 보도도 나왔지만, 연금은 입을 다물고 확인을 거부했다.

이런 국민연금의 ‘비공개’ 정책은 시장 혼란을 되레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상당하다. 당시에도 한 증권사 연구원은 “시장참여자들은 시장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와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구창우 공적연금강화시민행동 사무국장은 “국민연금 납부 금액, 수급 금액 등 개인적인 문제는 민원 창구를 통해 소통할 수 있지만, 왜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했느냐 등 사회책임투자 관련 사항은 직접적 민원 제기로는 요식적 답변 외엔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네덜란드연기금(APG)에서 기업지배구조를 담당하는 박유경 이사는 “네덜란드연기금은 개인납부자가 책임투자와 관련해 소명을 요구해도 전화, 메일 등으로 성실하게 답변한다. 현재 내가 맡은 업무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비공개를 고집해도 외부로부터 실질적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자산 500조원 이상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금융시장에선 큰손 중의 큰손이다. 오히려 다른 기관투자자들이 국민연금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형국이다.

결국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한 정보 비공개’를 앞세워 감시 사각지대에 머무는 연금의 투명성을 높이려면 국민연금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 선임절차의 투명성부터 먼저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강면욱 기금이사, 홍완선 전 기금이사는 서류평가의 경력점수가 낮았던 사실이 공개돼 선임 과정의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11월 기금이사 선임 과정에서 심사 세부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명문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 다음주 공청회를 앞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를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도입해 지키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원칙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는 충실한 의결권 행사를 위한 지침·절차·세부기준을 포함한 의결권 정책을 마련해 공개해야 하며, 의결권 행사의 적정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의결권 행사 현황과 판단의 사유 역시 공개해야 한다.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당시 아이에스에스(ISS), 기업지배구조원 등 의결권 자문기관이 반대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했는데 당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됐다면, 합병에 찬성한 이유를 소상히 공개해야 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의사결정에서 가입자 대표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구창우 사무국장은 “가입자 대표가 포함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 등이 현재 법적 지위가 모호한 상태인데, 이를 연금법에 명시해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적어도 가입자 대표·전문위원들은 필요할 때 실시간으로 연금 내 자료를 열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진 기자 ju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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