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1월 미시간주 플린트시 주민이 자신의 집에서 받은 수돗물을 들고 있는 모습.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10일 미시간주 등이 플린트시 수돗물 납 오염 사건 관련해 시민들에게 6억2600만달러를 지급한다는 합의안을 승인했다. AP 연합뉴스
현대 미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환경 오염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플린트시 납 오염 수돗물 사건에 대해 미국 법원이 미시간주 등이 시민들에게 7400억원가량을 보상한다는 합의안을 승인했다.
미국연방지방법원 미시간 남부지원 주디스 레비 판사는 10일 이 사건 보상금으로 미시간주 등이 시민들에게 6억2600만달러(약 7420억원)을 지급한다는 합의안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그레첸 휘트머(민주당) 미시간 주지사가 발표한 합의안을 법원이 승인한 것이다. 합의금 대부분은 미시간주가 부담하고 플린트시는 2000만달러를 낼 예정이다. 변호사들은 2억달러 이상을 소송 비용으로 요구하고 있는데, 레비 판사는 이에 대해서는 다시 판단하게 된다. 소송 비용을 제한 뒤 지급되는 합의금 중 80%는 어린이들에게 지급될 예정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미국 동북부에 자리한 미시간주 플린트시는 미국 자동차 회사 지엠(GM)이 탄생한 도시지만, 미국 자동차 산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워졌다. 인구가 1960년대 전성기에는 20만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10만명 이하로 줄었다. 주민의 절반 이상이 흑인으로, 흑인 거주 비율이 높은 도시다. 이 때문에 플린트시 수돗물 오염에 대해선 미국 공업 도시의 쇠락과 인종적 불평등을 상징하는 사건이라는 평이 나온다. <로저와 나>, <볼링 포 콜럼바인> 등 현대 미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쳐 온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가 이 도시 출신이다.
비극은 2014년 4월 디트로이트의 서북쪽에 위치한 플린트시가 시내를 흐르는 플린트강에서 물을 끌어다 수돗물을 공급하면서 시작됐다. 플린트시는 오대호 중 한 곳인 휴런호에서 물을 끌어다 쓰면서 이를 관리하는 디트로이트시 쪽에 사용료를 내왔다. 그런데 재정 부담이 커지자 휴론호에 직접 수도관을 연결할 계획을 세웠다. 플린트시는 공사 기간 중 돈을 아끼려고 시내 플린트강 물을 수돗물로 쓰기로 했다. 릭 스나이더(공화당) 당시 미시간주지사가 임명한 시 비상재정관리관이 이 계획을 주도했다.
식수원 변경 뒤 시민들이 수돗물 색깔이 탁해지고 냄새가 난다고 호소했다. 시는 물에서 대장균을 검출했지만, 시민들에게 “물을 끓여 마시라”는 권고를 하는 데 그쳤다. 이후 지엠이 수돗물 변경 뒤부터 플린트시 공장에서 생산하는 부품에서 부식이 발생한다고 호소했다. 시는 지엠 공업용수 공급처는 휴런호로 바꿨지만 시민들에게 공급하는 수돗물은 플린트강의 물을 계속 공급했다. 산성도가 높은 플린트강 물이 낡은 배관을 타고 흐르면서 납이 녹아 나오고 있었다. 납 용출이 공론화된 두 달 뒤인 2015년 10월 시는 식수원을 휴런호로 되돌렸다. 납 오염 수돗물에 6000~1만2000명 어린이가 노출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납 중독은 뇌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아들 셋이 납 오염 수돗물에 노출됐다는 플린트시 주민 멜리사 메이스(43)는 <에이피>에 이번 합의안 승인에 대해 “아이들이 치료를 받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며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합의안 승인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시민들은 미국 환경보호청 등을 대상으로 낸 소송 등 다른 민사소송들을 진행 중이다. 지난 1월엔 검찰이 스나이더 당시 미시간 주지사를 포함한 당시 당국자 아홉명을 직무태만 등의 혐의로 형사 기소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