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벗는’ 사관학교 졸업자 30년만에 최고치
탈영병도 증가세…국외 파병기간 늘어난 탓
탈영병도 증가세…국외 파병기간 늘어난 탓
두 개의 장기전을 치르는 미군의 병력난이 심각하다.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자들의 이탈이 30년 만에 최고에 이르고, 탈영병도 늘고 있다. 미 국방부는 교체병력 부족에 따라 국외 파병기간을 늘렸지만, 사기 저하와 이탈자 증가라는 악순환이 예상된다.
일간 <보스턴글로브>는 11일 웨스트포인트의 2001년 졸업자 903명 가운데 지난해 의무복무기간(5년)이 지나자마자 전역한 장교들은 35%, 이후 6개월 이내 전역자들까지 합치면 46%라고 보도했다. 2000년 졸업자들은 54%가 전역했다. 이는 냉전이 끝나고 미군이 대규모 병력감축에 나서 조기전역 대상자들을 골라 내보내던 1990년대 초를 빼면 30년 만에 가장 높은 전역률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미국 최고의 군사엘리트 양성기관인 웨스트포인트 출신자들의 태반이 군복을 벗는 것은 중간급 지휘관 부족을 겪는 미군에겐 심각한 상황이다. 이들은 최전선에서 병력을 통솔하는 중대장 진급 대상자들로, 웨스트포인트 생도 1명을 키우는 데는 수백만달러가 든다.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잭 리드 상원의원은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2001년 이후 작전 템포가 빨라졌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전장에 더 자주, 더 오래 머물러야 하는 상황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 국방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복무 희망 장교들의 대학원 진학 지원, 전시에 대통령 명령으로 특정 기술 보유자의 복무기간을 연장하는 제도 등의 고육책을 쓰고 있다.
탈영병 증가세도 가파르다. <뉴욕타임스>는 2007 회계연도의 첫 분기인 지난해 10~12월 871명이 탈영했다고 9일 보도했다. 이런 추세라면 이번 회계연도 탈영병은 3년 전보다 48%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탈영과 무단외출 등 군법위반에 대한 단속도 엄격해졌다. 1997~2001년에는 군법회의에 회부된 군인들이 전체 탈영자의 2%에 불과했지만, 2002~2006년에는 6%가 회부됐다.
미 해군 정신의학자인 토마스 그리거는 “국외 파병을 피하려고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을 자른 병사도 봤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군이 자원입대자 부족을 해결하려고 예전에는 걸렀을 학력 미달자나 범죄경력자들까지 받아들이지만, 탈영병을 더욱 늘리는 결과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11일 이라크와 아프간 주둔 미군의 파병기간을 현재의 12개월에서 15개월로 늘린다고 밝혔다. 미군 2만여명을 증파해 벌이는 이라크 치안유지작전 지속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언론들은 가뜩이나 불만을 품고 있는 병사들이나 그 가족들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했다.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은 “군을 한계상황까지 몰고가는 부시 행정부의 최후의 몸부림”이라고 비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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