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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적대감·복수심 표현 가득…내면 응어리가 ‘방아쇠’ 당긴 듯

등록 2007-04-18 19:24수정 2007-04-18 23:25

조승희씨 부모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 센터빌 인근에 위치한 한 총포상이 17일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문을 내걸었다. 센터빌/AFP 연합
조승희씨 부모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주 센터빌 인근에 위치한 한 총포상이 17일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문을 내걸었다. 센터빌/AFP 연합
[조씨 범행동기 엿볼 3가지 단서]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씨가 32명을 살해한 이유는 속시원히 풀리지 않고 있다. ‘치정’ 쪽에 무게가 실리지만 의문은 남는다. 끔찍한 살인극을 저지른 조씨는 의문을 풀 몇가지 단서만 남겼다.

의붓아버지·괴롭힌 교사 살해등
뒤틀린 상상 곳곳 섬뜩한 구절

악몽 같은 희곡=영문학과 4학년 조씨는 총과 전기톱이 등장하는 끔찍한 희곡을 수업의 창작 과제물로 제출했다. 미국 언론에 공개된 것은 <리처드 맥비프> <미스터 브라운스톤> 두 편이다.

<리처드 맥비프>는 13살 소년의 의붓아버지 살인극을 그렸다. 조씨와 같이 수업을 들은 스테파니 데리는 “그의 희곡은 정말로 병적으로 음울하고 괴기했다”며 “소년인 아들이 전기톱을 마구 집어던지며 의붓아버지를 망치로 공격하다가, 폭력적으로 아버지를 질식사시키는 것으로 끝난다”고 전했다. 희곡에는 “나는 그를 증오한다. (의붓아버지) 딕을 죽여야 한다. 딕은 죽어야 한다” “당신 양성애 사이코 강간범 살인자야? 제발 따라오지 마! 죽이지 마!” 등의 대사가 나온다. 다른 수강생인 이언 맥팔레인은 “그의 희곡은 마치 악몽 같았다. 완전히 뒤틀려 있었고, 생각할 수도 없는 무기가 쓰이는 끔찍한 폭력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다른 희곡 <미스터 브라운스톤>은 17살 소년이 학교를 빼먹고 카지노에 도박을 하러 갔다가, 자신들을 성적으로 괴롭히던 교사를 스토킹하고 살해하는 것을 공상하는 내용이다. “나는 그가 우리들을 피흘리게 한 것처럼 그가 피흘리는 것을 보고 싶다” “나는 그를 죽이고 싶다”는 내용이 나온다. 조씨의 희곡이 너무 끔찍해 동료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논평했다. 이 때문에 맥팔레인은 범인이 아시아계로 알려지자 동료들이 조씨를 범인으로 떠올렸다고 말했다.


조승희씨와 희곡 수업을 같이 수강한 동료 학생이 끔찍한 내용이 담긴 조씨의 희곡 두 편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 희곡에는 폭력적인 단어와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조승희씨와 희곡 수업을 같이 수강한 동료 학생이 끔찍한 내용이 담긴 조씨의 희곡 두 편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 희곡에는 폭력적인 단어와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너 때문에…’ 틀어진 관계 시사
‘부자 아이들’ ‘허풍쟁이’ 비난도

“너 때문에 이 일을 저질렀다”=조씨는 범행 도중 자신의 방에 온갖 불만과 독설로 가득 찬 세 쪽짜리 메모 2개를 남겼다. “부잣집 아이들”(rich kids) “방탕”(debauchery) “기만적 허풍쟁이들”(deceitful charlatans)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이 메모는 조씨가 기숙사에서 2명을 살해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와 남긴 것이라고 <에이비시>(ABC) 방송 등은 보도했다.

메모에 있는 “너 때문에 이 일을 저질렀다”는 대목은 범행 동기가 여자 관계 때문이라는 애초 증언을 뒷받침한다. 연방수사국(FBI)과 버지니아 경찰서장도 17일 최승현 주미 한국대사관 워싱턴지역 영사에게 “총기난사의 동기는 치정이나 이성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목격자들 사이에서도 조씨가 첫 희생자인 에밀리 힐셔와 심하게 다툰 뒤 그를 쏴, 힐셔와 연인관계가 아니었느냐는 추정이 많다.

그러나 힐셔는 그의 여자친구가 아니며, 조씨는 여자친구조차 없었다는 증언이 잇따른다. 힐셔의 룸메이트 헤더 호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힐셔의 남자친구는 따로 있었고, 조씨와 힐셔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조씨를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른다”고 말했다. 조씨의 룸메이트 조지프 오스트도 “그는 여자친구가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씨가 여성을 스토킹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그가 힐셔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다가 거부되자 격분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종교적으론 ‘이스마일의 처형’ 뜻
총과 도끼 든 소설 주인공 해석도

팔에 쓴 ‘이스마일 액스’=조씨의 팔 안쪽에는 붉은 잉크로 ‘Ismail Ax’(이스마일 도끼)라고 쓰여 있었다고 <시카고트리뷴>이 보도했다. 이 단어는 그의 노트에서도 발견됐다. 미국 언론도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조씨가 영문학을 공부했다는 점에서, 우선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 <대평원>과 관련돼 해석된다. 버림받은 무법의 전사 이스마엘 부시는 살인을 저지르는 약탈자의 도끼(악의 원시적 상징)를 갖고 대평원을 넘는다. 외톨이 조씨가 이스마엘 부시에 자신을 투영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 ‘이스마일 도끼’는 종교적으로 해석된다. 신은 이슬람교 옛 조상 이브라힘(기독교의 아브라함)을 실험하기 위해, 소중한 아들을 죽여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한다. 이 희생자 아들을 코란은 86살에 여종과의 사이에 낳은 이슬람교 조상 이스마일로, 성경에서는 100살에 아내와의 사이에 낳은 기독교 조상 이삭으로 표현한다. 이브라힘이 아들을 죽이려던 도구가 코란에서는 도끼로 성경에는 칼로 그려진다. 코란에서 이브라힘이 우상을 깨뜨린 것도 도끼다. 알카에다가 테러를 ‘이스마일의 형벌’ ‘신의 처형’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흉내냈다는 해석이다. 이민 1.5세대로 외톨이였던 자신을 서자 이스마일로 비유했다는 해석도 있다. 김순배 기자, 연합뉴스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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