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총기소지…해묵은 쟁점들 다시 논란
ABC방송국 “범인영상 방연않겠다”
ABC방송국 “범인영상 방연않겠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의 해묵은 쟁점이 다시 분출하고 있다. 정신질환을 가진 학생 관리 문제, 총기소지 허용, 조승희씨가 <엔비시>에 보낸 영상·사진의 보도에 대한 논쟁이 거세다.
조승희씨가 정신질환을 앓았으며,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대학 쪽의 관리가 소홀했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에서는 이런 결과가 미국의 프라이버시법과 반차별법이 너무 엄격했기 때문에 촉발됐다고 주장한다. 미국 대학들은 대부분 당사자 동의 없이는 부모에게조차 의료기록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뉴욕타임스>는 19일 보도했다.
리처드 카디슨 하버드대 교수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불쾌할 만큼 괴상한 주제로 글을 썼다고 해서 대학은 그들을 쫓아낼 수 없다”며 “대부분의 주에서 시행되는 법에 따르면 학생의 행동이 본인 또는 다른 이에게 즉각적인 위협이 있어야 대학이 약간의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대학의 상담센터를 이끌고 있는 러스 페더먼은 주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조씨는 도움을 원치 않았고, 구체적으로 법률을 어기지 않았지만 정신질환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며 “이 사건은 법률의 회색지대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대학이 정신질환과 관련한 정보를 비밀로 하거나, 반대로 정신질환을 이유로 섣불리 격리조처를 내리는 상반된 두 가지 상황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모호함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000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재학중이던 한국계 여학생 엘리자베스 신이 우울증을 앓다 자살하자 부모는 딸의 문제를 알려주지 않았다며 학교에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했다. 반면, 지난해 자살을 기도했다가 입원한 경력이 있는 학생이 뉴욕의 헌터대학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자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6만5000달러를 배상받았다.
그러나 정신질환이 있는 이들이 조씨와 같은 범행을 일으킬 확률은 매우 낮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인권은 보호하되, 치료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최대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0년간 정신질환을 앓았던 대학생들은 증가하고 있다고 주간 <뉴스위크>가 19일 보도했다. 미국대학건강협회(ACHA)가 2005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10명 중 4명의 대학생들이 최근 12개월 안에 ‘우울감을 느껴 활동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를 총기 판매 때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미 연방 규정은 법원으로부터 정신적 결함 판정을 받은 사람에게 총기판매를 금지하고 있으나, 17개 주에서만 총기 구입 때 정신건강 정보가 활용된다고 총기사고 예방단체 브래디센터의 데니스 헤니건이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이 밖에도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제기되는 총기소지 규제 주장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오히려 총기소지 옹호론자들은 대학 캠퍼스에서도 방어용으로 총기를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씨가 <엔비시>에 보낸 영상과 사진이 여과 없이 보도된 것에 대한 비난도 거세다. 폴 레빈슨 뉴욕 포덤대학 교수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라며 “조씨는 공인도 아니고 정부가 뒤쫓고 있는 테러리스트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에이비시> 기자 출신으로 현재 언론학을 강의하는 주디 뮬러는 “유익한 새 정보를 방송한 것”이라며 “(이 사건의) 의문점 가운데 하나는 범행 동기”라고 주장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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