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무어 미 건강보험 다룬 다큐서 공개…언론 “적성국 의료 옹호” 비판도
2001년 9·11 미국 동시테러 때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헌신적인 구조작업을 벌여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 구조대원들이 ‘적성국’인 쿠바에서 치료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아카데미상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국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지난 2월 9·11 현장의 구조대원 10명을 치료차 쿠바로 데려갔다. 무어 감독은 미국 건강보험의 허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시코>(‘병자’란 뜻의 미국 속어)에 이들의 치료 과정을 담았다.
쿠바에 간 구조대원들은 9·11 직후 처참한 현장에서 유독 물질에 노출된 채 잔해를 청소하고 구조작업을 펼쳤다. 9·11 당시 구조대원들은 먼지와 재, 독성 물질에 노출돼 6년째 호흡곤란 등 각종 후유증에 시달려 왔다. 민간기업에 운영하는 미국 건강보험은 수가가 높아 전체 인구의 20% 가량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국가 위기를 극복한 상징인 9·11 영웅들이 후진국이라고 무시해온 쿠바에서 치료를 받자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일 무어 감독에게 편지를 보내 “미 당국이 쿠바 등을 여행할 수 있도록 무어에게 허가해준 특별한 기록이 없다”며 적성국교역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겠다고 통보했다.
<뉴욕포스트>는 “무어가 쿠바의 공산주의 보건의료 프로그램을 칭찬한 반면, 자유시장에 기반한 미국 건강보험을 헐뜯었다”고 비판했다. 9·11 현장에서 잔해를 청소했던 철강 노동자인 조 피코로는 “나는 쿠바에 가느니 미국에서 죽겠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시코> 프로듀서인 메그헌 오하라는 “미국의 의료보호 시스템은 망가졌고 치명적인 상태”라며 “조지 부시 행정부는 무어 감독을 비난할 시간이 있으면 9·11 영웅의 건강부터 챙기라”고 반박했다.
쿠바는 1959년 사회혁명 이후 무상의료를 도입했고 예방에 중점을 둔 보건의료체계를 갖췄다. 쿠바에선 재활서비스 또한 무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보면, 미국과 쿠바는 영아사망률, 기대 수명 등이 비슷한 수준이다. 무어 감독은 19일 칸 영화제에서 <시코>를 선보인 뒤, 미국에서는 다음달 29일 개봉할 예정이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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