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 구성원들의 판결 성향
인종통합 훼손, 경영진 편들기 등 부시 행정부 성향 대변
자유주의 가치 위협 지적…대법관 구성 ‘보수 5, 진보4’ 영향
자유주의 가치 위협 지적…대법관 구성 ‘보수 5, 진보4’ 영향
미국 연방대법원이 100년 가까이 유지된 판례까지 뒤집으며 보수적 판결을 쏟아내고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보수주의 성향이 사법부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연방대법원은 28일 공립교육기관들이 흑·백 인종을 골고루 뽑겠다며 학생 배정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평등보호권에 어긋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은 특정 학교에서 흑·백 균형을 맞춘다며 백인 학생 수를 제한한 것은 “인종에 기반한 차별”이라고 밝혔다. 루이스빌과 시애틀의 학부모들이, 지역 교육위원회가 백인 학생들이 원하는 유치원과 학교에 진학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낸 소송에서 항소법원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흑·백이 따로 다니는 공립학교들을 위헌으로 규정한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례(1954년)를 크게 훼손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세기 중요 판결의 하나로 평가받는 이 사건 변호사로 나섰던 로버트 카터 연방판사는 연방대법원이 이번에 ‘학교 배정에서 인종차별을 하지 말라’는 옛 판결 취지를 악용했다고 비난했다. 교육위원회들이 인종 균형을 통제하기 어려워지면 다시 흑인학교와 백인학교가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이날 연방대법원은 제조업체들이 유통업체들과 최저소매가를 협의하는 게 자동적으로 반독점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라며, 1911년에 나온 판례를 뒤집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이 판결이 소비자가격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며 반대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25일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도 기존 판례를 잇달아 뒤집었다. 연방대법원은 낙태 반대단체가 낸 소송에서 이익단체들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 현안을 다룬 광고를 내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002년 마리화나 흡연을 암시하는 플래카드에 “예수”라는 표현을 썼다가 정학당한 고교생이 낸 소송에서는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조인들은 “학교 당국은 파괴적인 것이 아닌 한 학생의 표현을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1969년 판례를 부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잇따른 보수 성향 판결에서는 하나같이 대법관들 의견이 5 대 4로 갈린다. 이는 2005년 지명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필두로 한 연방대법원 진용의 성향이 보수 4명, 중도보수 1명, 진보 4명이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의견 대립도 극명해지고 있다. 28일 법정에서는 학교 배정문제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낸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이 “대법원과 이 나라는 이번 판결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20여분간 열변을 토했다. <뉴욕타임스>는 공립학교 배정과 최저가격 협의 등에 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모두 부시 행정부의 방침과 맞아떨어진다고 보도했다.
최근 연방대법원은 소비자와 주주들이 낸 소송에서 기업·경영진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부쩍 많이 내리고 있다. 이 판결들에서도 대부분 5 대 4로 견해가 나뉘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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